"'나부터 혁신'해야 한국일보가 강해진다"

[2021 신년사] 이영성 한국일보 사장

‘나의 혁신’

지난해 신년사에서 “두려움을 떨치자”고 했습니다. 익숙함과의 결별을 두려워해서는 앞으로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연구하고 검토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디지털 체제로 과감히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신문 제작 구조를 디지털 뉴스 중심으로 전환하는 조직 혁신,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자는 선택과 집중, 기자들의 개별적 경쟁력 제고를 이뤄내자고 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는 익숙한 신문 제작 구조에서 벗어나 디지털 체제로 전환했고 순항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평가는 한겨레 경향 등 다른 신문사 간부들이 우리의 조직 개편과 디지털 혁신 내용을 문의하고 학습하고자 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CMS 파동처럼 돌발적인 악재도 있었습니다. 초반 혼선도 있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감당하기 힘든 피로가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일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겠어”라는 일각의 냉소적 우려는 사라졌습니다. 특히 걱정했던 신문의 품질은 에디터들과 편집자들의 노력으로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제 첫 발을 뗐을 뿐입니다. 다른 미디어와는 다른 독보적인 콘텐츠, 차별화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고 볼 수 없고, 기자들의 개별적인 디지털 경쟁력은 나아졌지만 두드러질 정도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아무리 조직과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구성원들이 변하지 않고 경쟁력이 올라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이는 뉴스룸, 신문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사업과 광고, 경영 전반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2021년의 화두로 ‘나의 혁신’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내가 변하고, 우리가 변하고, 그 결과 한국일보가 강해지자는 것입니다.

작년 화두인 익숙함과의 결별은 여전히 유효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쓰는 문법부터 달라져야 하고 새로운 주제,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를 만드는 실험을 주저함 없이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결별과 실험은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나부터 시도하고 현장에서 실천돼야 비로소 성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매우 희망적인 것은 뉴스룸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디지털전략팀과 뉴스룸 커넥트팀이 긴밀한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콘텐츠, 우리만의 콘텐츠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사 쓰는 방식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독자들에게 콘텐츠를 더 잘 유통시킬 수 있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습니다. 시대 변화를 반영한 기획, 미래에 정말 중요한 이슈를 찾는 아젠다 설정도 밀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실험도 시도될 것입니다.

뉴스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외부 입찰에 도전,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5년 35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프로젝트를 경영전략본부가 다른 IT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따냈고 연간 4억5000만원의 대한상의 홍보 프로젝트를 AD전략국이 맡았습니다. 커머스 사업도 시작했고 디지털 광고, 디지털 콘텐츠 수익도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 이런 시도들이 큰 결실을 맺으려면 한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구성원 모두가 한 땀 한 땀 힘을 보태야 합니다. 아닙니다. 힘을 보태는 정도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내가 한국일보’라는 인식 아래 변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사장을 포함, 경영진도 예외가 아닙니다. 스스로 혁신할 것이며 뉴스룸을 비롯 사업, 광고 파트의 혁신과 실험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대기자 제임스 레스턴은 1987년 은퇴하면서 마지막 칼럼에서 “마감 시간을 두고 글을 쓰는 것은 풍차의 날개에 머리를 얻어맞는 것과 비슷하다”는 소회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언론인의 삶은 힘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진실과 가치를 다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매일 풍차의 날개에 머리를 맞습니다. 어떻게 디지털로 가야 할지를 고민할 때, 코로나 팬데믹으로 광고 수익이 줄어들 때, 큰돈을 들인 C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가 진영에 갇히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이 사회의 갈등이 더욱 극심해질 때 풍차의 날개는 어김없이 저를 매섭게 후려쳤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아픔도 선후배들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2021년 새해는 우리 내부의 신뢰를 재구축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네가 잘해”가 아니라 “나부터 잘하겠다”는 자세를 가져보려 합니다. 우리 구성원 모두 “내가 한국일보”라고 외치며 혁신의 선두에 서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우리는 건강하고 훌륭한 한국일보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2021년 1월4일
한국일보 사장 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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