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를 견제하지 않고 놔뒀더니 우리 밥그릇이 깨졌네요"

경기방송 폐업 막전막후 담은 '방송이 사라지던 날' 펴낸 노광준 PD, 윤종화 기자

두 번 해고됐다. 첫 번째는 회사에 ‘찍혀서’, 두 번째는 방송사업 폐업에 따른 정리해고였다. 첫 번째 해고는 두 번의 노동위원회에서 모두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웃지 못했다. 177일 만에 복직한 회사가 출근 사흘째 되던 날 아예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방송사상 초유의 자진폐업’ 사례로 기록된 경기방송 사태, 그 사건의 당사자이자 증인이길 자처한 노광준, 윤종화 두 사람 이야기다.


윤종화 기자(사진 왼쪽)와 노광준 PD가 노 PD가 쓴 '방송이 사라지던 날'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두 사람은 2019년 8월 방송사를 쥐락펴락하는 실세 간부의 역사 왜곡 발언 등을 폭로했다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20년을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내쳐진 노광준 PD는 해고통지서를 받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오늘 해고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었다.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해고일기를 바탕으로 얼마 전 <방송이 사라지던 날>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방송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에 맞선 311일’이란 부제를 단 책에서 그는 대주주 등 일부 권력에 의해 사유화된 방송의 말로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윤종화 기자가 10년 넘게 업무수첩에 기록해 온 간부회의 발언, 취재지시 등이 증거고, 증언이었다. 그 속에는 불의에 침묵했던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반성도 담겨 있다.


“대주주에 대한 견제를 소홀히 했던 저를 포함한 모든 언론인이 감당해야 할 몫인 거죠. 대주주를 건드리면 우리 밥그릇이 깨진다고 생각했는데, 건드리지 않고 그냥 활개 치게 놔뒀더니 밥그릇이 스스로 깨졌어요. 그게 경기방송 사태가 남긴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는 10분의 1 만큼이라도 내부 권력을 돌아보고 견제하는 것이 결국 우리 밥그릇을 지키는 일 아닐까요.”(노광준)


노 PD는 해고 후 꾸준히 글을 쓰면서 우울과 무력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해고일기엔 친구요청과 위로, 격려, 공감의 댓글이 쇄도했다. 덕분에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도 출연하고 포털 사이트 실검 1위에도 올라봤다. “언론인이라 운이 좋았던 것 같다”는 그는 “나중에 복직하면 해고 노동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언론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윤종화 기자는 해고 무효 소송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예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실습은 다 했고, 이론을 해보자”며 두 달 전부터 공부를 시작한 참이다. 생계 문제는 여전히 막막하지만, 구직급여와 아내의 헌신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20년 동안 라디오만 해온 노 PD는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독학해 유튜브에서 입시정보 영상을 만드는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다시 세워질 ‘새로운 경기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침 지난 연말엔 희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경기도의 ‘경기교통방송 설립 타당성 연구’ 용역 결과 TBS와 같은 비영리재단 법인 형태 ‘경기도형 공영방송’ 설립의 청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윤 기자는 “경기방송 사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했기 때문에 소유 형태는 공영으로 가는 게 맞다”면서 “새해는 경기도형 공영방송이 시작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문제를 주목한다는 노 PD는 ‘새로운 99.9’(기존 경기방송 주파수)는 “녹색채널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 녹색채널은 경기 지역 31개 시·군의 마을공동체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서 모든 지역과 마을미디어, 시민들의 참여를 이뤄내야 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새로운 지역미디어를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용역 결과는 기념비적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그 발표가 현실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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