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교수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다. 재판부는 정 교수에게 검찰이 적용한 15가지 혐의 중 11가지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나는 재판부가 법정구속하겠다고 밝힌 순간 정 교수가 당황하던 모습을 법정에서 목격했다. 하지만 당황한 사람은 정 교수뿐이 아니었다. 검찰이 조작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하나둘씩 깨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정 교수의 지지자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유죄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유죄 판결이 파기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이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정 교수와 조국 전 장관이 단순히 법리적 무죄만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 검찰이 밝힌 사실관계 자체를 대부분 부정했기 때문이었다. 조국 전 장관 부부를 믿는 사람들 입장에선 검찰이 법 적용을 무리하게 한 정도를 넘어 아예 사실관계를 조작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제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도 조작의 공범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같은 인지부조화 현상에 수사와 재판 과정을 보도했던 언론사들의 책임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몇몇 사람들이 강조했던 ‘공판중심보도’의 한계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1심 판결이 선고된 후 여러 언론사들은 판결문을 근거로 조국 전 장관 또는 정경심 교수의 명백한 거짓말을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보도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지난 1년 동안 진행됐던 재판 과정에서 명백한 증거를 통해 드러났던 것이었다는 점이다. 조국 사태 이후 강조됐던 이른바 ‘공판중심보도’, 검찰 수사보다는 공개 재판 과정을 비중 있게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여러 기자들이 공판을 충실하게 지켜봤고 관련된 기사도 많이 썼다. 하지만 조국 지지자들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일반적인 뉴스 소비자들도 조국 전 장관 부부의 주장 중 상당 부분이 명백한 거짓이라는 사실을 판결 선고 전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언론사들이 ‘공판중심보도’를 일종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검찰 수사에 중점을 둔 보도에서 탈피해 재판 보도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 자체는 옳았다. 그러나 공판에서 벌어진 일을 중계하듯 전달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를 확인한 후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판단해 보도할 책임은 여전히 기자에게 남아있다. 극성 지지자들의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재판을 보도할 때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사가 검찰과 정 교수의 공방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그쳤다. 그 와중에 재판 과정을 왜곡해 전달한 일부 유튜버들의 방송이 팩트에 대한 가치판단이라는 정상적 언론 기능을 대체했다. 팩트 판단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기회주의적 공판중심보도’가 인포데믹(infodemic)을 초래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보도만 이어간다면 시간이 지나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지금의 뉴스 소비자들이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에 가장 바라는 가치는 비정파적으로 사실을 판단하는 능력과 용기다. 공판중심보도의 전제는 판단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