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미국 언론이 겪은 시행착오

[언론 다시보기]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언론사의 2021년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콘텐츠와 디지털이었다고 한다. 작년과 똑같다.


되돌이표 총론 속에서 한 발 나간 각론이 눈길을 잡았다. ‘구독 모델 뉴스 플랫폼 완성’. 딱 10년 전인 2011년의 미국 언론계를 떠올리게 하는 신년사 제목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국 레거시 언론사들의 운명은 2011년에 갈렸다. 그해 3월28일 뉴욕 타임스(NYT)는 페이월을 도입했다. 기사 20건까지는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읽으려면 월 15달러를 내야 하는 정책이었다. 소위 구멍이 숭숭 뚫린(porous) ‘소프트 페이월’이다. 이듬해 무료기사 건수를 10건, 2017년에 5건 등으로 줄여가며 헤비 유저층과 지불의사에 따른 독자층을 잘게 나눠 파악하는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페이월의 선두주자는 1997년 디지털 기사를 유료화한 월스트리트 저널(WSJ)이었다. 하지만 2012년 2월 블룸버그 출신의 렉스 펜윅(Lex Fenwick)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한 게 화근이었다. 그는 ‘동일 상품, 동일 가격’을 밀어붙였다. 펜윅 취임 직전인 2011년까지도 디지털 구독자는 WSJ가 훨씬 더 많았다. 그 해 WSJ 디지털 구독자는 약 54만명으로 NYT의 38만명보다 42%나 많았다. 이 숫자는 이듬해 역전되기 시작해 2013년이 되자 NYT의 디지털 구독자(122만명)가 WSJ(91만명)을 압도했다. 결국 펜윅은 2년 만에 해고됐고 WSJ의 디지털 전략은 수정됐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NYT의 영원한 라이벌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콘텐츠’와 ‘디지털’에 매진해 오던 터였다. 통계에 기반해 편집국을 운영하는 ‘퀀트’ 문화를 정착시켜 2011년 월간 순방문자수 2560만명을 달성했다. 이 숫자는 당시 3500만명이던 NYT에 이어 2위였다. 단, 결정적 한 가지가 달랐다. 무료 전략이었다. 웹사이트 트래픽 극대화를 통한 디지털 광고에 돌파구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 전략은 2013년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조스에 팔리고 나서야 수정됐다.  


많은 경우 페이월을 ‘유료’로 해석한다. 하지만 방점은 열독 행태 및 지불 의향에 따른 독자 세분화와 그에 기반한 가격 차별화에 있다. 그래서 디지털 경제학자들은 ‘페이월=가격 차별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독자들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가격 차별화 정책으로 매출과 소비자 후생을 함께 높이는 최적점 발견이 디지털 콘텐츠 경제학의 핵심 역량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뉴욕 타임스의 페이월 도입이 종이 신문 절독을 저지했다는 점이다. 디지털이 유료로 전환되자, 디지털 무료 혜택이 주어진 종이 신문 구독자(헤비 유저)에게 구독 가치 증대 효과가 발생했고, 이것이 독자들의 절독을 재고하게 만든 것이다. 디지털 구독료에 비해 10배 이상 비싼 가정 배달은 소폭 증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페이월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각각의 구독 및 광고 매출 4자간 상쇄 효과를 분석해 총 매출 최적점을 찾는 언론사 플랫폼 경영의 출발이기도 하다.


경쟁 역학이 다르고, 구독 성향이 다른 한국 시장이 미국처럼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시행착오를 거친 미국의 10년 전 케이스 스터디는 ‘시간 압축적’ 학습이 될 수 있다. 부디 신년에는 언론사들이 한국형 구독 모델 플랫폼에 성공해 ‘복잡한 세상사의 믿을 만한 해설사’로 도약하는 물꼬가 트이길 독자로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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