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자 40여명이 정권 편향적인 보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현장과 동떨어진 일방적인 찍어 누르기 기사 지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집단행동을 했다. 이들은 정권 감싸기가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공정한 보도를 촉구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을 둘러싼 보도 과정이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자들은 추미애(당시 법무부장관) 라인 검사가 준 자료를 특가법 대상이 아니라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기사화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법조 기자가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보고를 수차례 올렸는데도 무시당했다며, 무리한 편들기가 결국 오보로 이어졌다고 고발해 충격을 더했다. 한겨레는 파장이 커지자 지면을 통해 “사안의 본질과 진실을 전달하는 데 미흡했고 결과적으로 맥락을 왜곡, 오도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공개 사과했다. 기자들이 성명을 내기 전까지 쉬쉬했다는 고백을 한 셈이다.
한겨레는 지난해 5월 ‘윤석열 별장 접대 오보’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사실 확인이 불충분했다”고 독자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취재원이 준 정보를 검증 없이 기사화해 오보를 냈다. 당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성찰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사내 검증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이번 오보는 막을 수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 확인의 규율이 허물어졌다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진상 규명이 불가피하다.
이번 성명은 조국 사태 이후 더 첨예화된 진영 싸움의 한가운데 있는 한겨레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고 있다. 한겨레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처음으로 고발하며 시민들이 촛불을 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언론이 언론다울 때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진가를 보여줬다. 시민들도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권력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의 역할을 올곧이 수행했을 때 한겨레는 가장 빛났다. 그 한겨레가 지금 안팎의 비판에 흔들리고 있다. 조국 사태부터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갈등까지 검찰 개혁이란 명분에 집착해 오히려 본질을 호도한 측면이 있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윤석열 퇴진과 검찰 개혁을 등치시켜 편향성을 심화시킨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법원이 ‘법무부의 윤석열 징계’를 기각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언론의 정파성도 저널리즘의 기본 위에 서 있어야 편향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언론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한 채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언론의 신뢰는 곤두박질친다. 한겨레 신뢰도가 왜 하락하는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겨레 윤리강령은 “사실과 진실을 바르게 전달하지 않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알릴 권리와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 기자들의 최근 성명이 한겨레가 추구해온 가치와 정신을 되돌아보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도록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파악해서 해결책을 찾는 데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편집국장이 기자들의 성명에 답하며 “성역을 두지 않고 권력과 자본을 비판해온 한겨레 기자로서 자긍심을 훼손당하지 않으려는 비명 같은 외침”이라고 인식한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겨레 창간 당시 논설고문인 리영희 선생은 책 <우상과 이성>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한겨레가 지금 되새겨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