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를 그만둔 지 4년이 됐지만, 지금도 프리랜서로 아사히신문GLOBE+라는 온라인판에 한국 문화 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아사히신문GLOBE+에서 동아일보 기사 번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우익은 일본어로 그대로 右翼(우요쿠)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뭔가 뉘앙스가 다른 듯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이임 인사차 면담을 거부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일본 측 외교 소식통이 “스가가 우익의 비난을 받을 수 있어서 면담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정말 스가 총리가 우요쿠의 비난을 우려해서 거부했을까? 내가 보기엔 자민당 지지자들의 비난 정도는 의식해서 거절했을 수 있겠지만 일본인이 생각하는 우요쿠는 아닌 것 같다. 고민하다가 ‘右派(우하)’로 바꿔 번역했다.
한국 언론이 말하는 일본 ‘우익’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우요쿠’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본에서 ‘우요쿠’라고 하면 좌익의 대립 개념이라기 보다는 대음량으로 군가를 틀면서 차로 달리는 무서운 조직폭력배와 같은 단체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걸 그룹 ‘IZ*ONE (아이즈원)’을 탄생시킨 Mnet 오디션 프로그램 ‘PRODUCE 48’이 방송됐을 당시 참가한 일본 아이돌 ‘AKB48’ 멤버나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가 ‘우익’이라는 소문이 한국에서 퍼졌을 때 당황했다. AKB48이 과거에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공연한 것이 그 근거의 하나였다. 알아보니까 지역 벚꽃 축제 때 무대에 올라서 노래하고 춤춘 일을 가리킨 듯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벚꽃 명소이기도 하다. 그것도 2006년의 일이라면 AKB48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이다. 공연에 뭔가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 같진 않다. 설령 그런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로 ‘우익’이라고 하는 건 일본인 감각으로는 지나친 표현이다. 이러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결국 방탄소년단과 아키모토 프로듀서의 협업곡이 취소되는 일로 발전했다.
국민적 아이돌 그룹이 한국에서 ‘우익’이라고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누가 좋아할까. 혐한 세력이나 “또 한국에서 가짜뉴스”라고 좋아할 뿐, 일반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일부러 공격하려고 시작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오해를 풀려는 보도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양국에서 악감정을 남긴 결과로 끝났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른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오해가 생기기 쉽다. 한국에서 쓰이는 ‘친일파’도 일본어로 번역할 때 고민되는 단어 중 하나다. 일본 사람들은 보통 ‘친일파’라고 하면 ‘일본에 친근감을 갖는 사람들’이라는 한자 뜻대로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민족의 배신자와 같은 뜻이 포함돼 있다고 알고 놀라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친일파 단죄’라는 말이 나오면 왜 일본에 친근감을 갖는 사람을 단죄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기사를 번역하는데 그 배경까지 설명할 수는 없고 난감할 때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판결이 나왔지만, 한국 보도를 보면 더 이상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코로나19로 한국과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와중에 제발 한일관계라도 좋아졌으면 좋겠다. 한일 뉴스를 다루는 한 사람으로서 오해를 만들거나 오해를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