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마지막 학기가 끝났던 2019년까지 필자는 기후변화에 관심 많은 언론사 지망생이었다. 본격적인 수험생 생활 시작을 앞두고 ‘언시생’들이 한 번쯤 찾는다는 한터(한겨레 배움터)에서 기초 강의도 듣고, 신문 스터디도 시작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냈다.
수험 생활을 포기하기까지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해 9월21일 대학로 앞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집회가 개최됐다. 기후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세계적으로 40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던 대규모 시민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날 국내 기후관련 집회 중엔 처음으로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다음 날 들뜬 마음으로 신문을 펼쳐들었지만, 스터디원들이 구독하던 주요 신문 중 그날의 행사를 보도한 곳은 없었다. 언론사 입사 후 기후변화를 보도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자연스레 스터디에 나가지 않게 됐다.
대신 지난해 봄, 언론에 관심있는 청년들과 함께 기후변화와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기후변화를 다루는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시의성 있는 기후변화 이슈들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각자 하나의 언론사를 맡아서 구독하며 지면에 기후변화 관련된 보도가 어떻게 담기는지 살펴봤다.
언론사 준비를 포기했던 내 결정이 무색하게 1년 새 언론의 기후변화 보도는 빠르게 바뀌었다. 정부와 여당이 K-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 정책’을 내세우면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길었던 장마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기후변화를 다루는 보도가 급증했다. EU의 그린딜 정책과 기후변화 극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도 한몫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보도의 양적 성장과는 별개로 많은 언론들이 양질의 보도를 만들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의제설정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하다”는 보도 외에 온실가스 감축의 각론들은 지면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또 다수의 언론이 70조원을 더 들여 이미 있던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20%만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 보도자료를 베껴쓰기도 했다. 앞 지면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할애해 놓고 뒷면에 재생에너지를 비난하는 논설이나 기사를 써놓는 비일관적인 논조들도 왕왕 보였다.
의제설정은 흔히 말하는 언론의 핵심 기능이다. 어떤 의제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이 바뀌고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과거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성 미디어는 의제설정에 여전히 큰 지분을 갖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선언될 만큼, 기후변화 극복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우린 기후변화가 초래할 일상적인 재해들과 경제위기의 충격을 어떻게 막을지 논의해야 하며, 조속히 화석연료 산업을 탈피해 저탄소 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기저에 있는 언론의 자성과 역할이 없다면 갈 수 없는 길이다.
올해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이행계획을 포함해 2030년 감축목표 상향까지 핵심적인 논의들이 예정돼 있다. 지금도 양질의 보도를 위해 애쓰고 있는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실질적인 이행계획과 감축목표 상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