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정치화·이중잣대 언론 보도, 방역에 나쁜 영향"

백신 보도 문제 토론회… 이재갑 교수 "전문가를 자판기나 콜센터로 이용 말라"

“제일 분노했던 게 지난해 독감 백신 접종 때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019년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자가 1500명이었다고 발표하며 백신과의 인과관계는 없다고 했는데, 모 신문사 편집국의 높으신 기자가 이 말을 한 것 자체가 독감 백신 대응에서 실패한 거라고 칼럼을 썼다. 그분에 대해선 아직도 분노하고 있고, 그 신문사 기자 전화도 안 받는다.”

감염병 전문가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백신은 과학인데 언론이 되고 정치가 된 상황이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망 관련 보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이재갑 교수는 4일 자유언론실천재단과 새언론포럼이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나와서도 ‘공부하지 않는 기자들’과 ‘백신을 정치화’하는 언론을 강하게 질타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과 새언론포럼 공동 주최로 코로나19 백신 보도의 문제를 진단하는 토론회가 4일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열렸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 화면)

이재갑 교수 “공부 안 하고 전화하는 기자들에 분노”

이 교수는 먼저 “기자들이 재난 보도와 백신 기사의 차이를 구분 못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난 보도는 당연히 신속해야 하고, 빨리 전달해야 한다. 반면 백신 관련 기사, 특히 이상 반응은 과학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기획기사 형태로 정제되고 신중한 형태로 보도돼야 한다”며 “코로나라는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마다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데, 재난 보도 습성 때문에 백신 보도에서 과학적 사실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측면이 부족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전혀 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질문”하는 기자들을 꼬집으며 “전문가를 모든 것에 답해주는 자판기나 콜센터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준비 없이 연락하는 기자들을 보면 이 기자가 나를 뭐로 생각하나 싶어 분노가 인다”며 “본인이 공부한 내용에 대해 모르는 것, 기사에 꼭 들어갈 멘트가 필요할 때 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보도에 대해선 현직 언론인들의 문제의식도 컸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한국언론의 코로나19 보도 특징으로 △오락가락 잣대(안전성 vs. 시급성) △방역의 정치화 △사건기사 취재방식 △속보 중심 △기사 쪼개기 △발표에 의존 등 6가지를 꼽았다. 이는 지난해 가을 독감 백신 보도 문제점으로도 언급된 것들인데, 김 대표는 “(코로나19 백신 보도에서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똑같이 보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5개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희망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지난해 10월 83%였던 것이 12월 75%로 두 달 사이 8%p 줄어 15개국 중에서 4번째로 낙폭이 컸다. 지금 즉시 백신을 맞을 수 있다면 맞겠다는 응답은 15개국 중 프랑스와 함께 가장 낮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11월 독감 백신 보도가 쏟아지며 죽는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다른 나라보다 백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 집요하고 악의적인 보도에, 손에 쥔 백신(AZ)도 못 썼다”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도 언론 보도가 실제로 방역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기자는 “지난해 11월부터 백신을 빨리 계약해야 한다, 언제 들여오느냐, 다른 나라는 접종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왜 안 하느냐 등 논란이 일었고, 1월부터는 정부가 미리 확보하고 가장 먼저 접종하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몇몇 언론은 집요하고 악의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문제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제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 문제는 거의 근거가 없는 것이었지만, 이미 “문제 있는 백신”으로 낙인찍힌 뒤였다. 강 기자는 “그렇게 되고 나니 어떤 문제가 생겼나. 질병관리청 산하 백신 일정 전문가들이 시쳇말로 ‘쫄았다’. 관료 보신주의도 작용했겠지만, 결과적으로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우리가 손에 쥔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결정을 내린 거다”라며 “손에 쥔 백신을 언론 때문에, 그런 언론 눈치를 보는 정부 때문에 접종 못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생명과 직결된 보건 역량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일 대표는 유독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 문제가 집중 제기된 것은 “정부에서 가장 많이 확보한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이기 때문에 정파적 이유로 공격당한 게 아닌가”라는 추정을 제시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의 발표 자료 중 일부

비슷한 맥락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잘못된 발언들이 그대로 따옴표 처리돼서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재갑 교수는 “정치부 기자라도 백신 관련해 팩트체크를 해줘야 하는데 보통의 정치 기사 다루듯 한다”며 “팩트 자체가 프레임에 갇혀 지지자들을 뭉치게 하고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소비되게 한다”고 지적했다. 강양구 기자는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무슨 얘기를 하면 가짜뉴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 문구가 뜬다. 미국 대통령에 대해 소셜미디어도 최소한의 공공성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방역, 백신 관련해 잘못된 멘트가 전달되지 않게 하려면 최소한 그런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미디어보다 기자 개인 신뢰도 낮아…“이 상황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나”

이런 상황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회사인 에델만의 코로나19 관련 신뢰도 조사를 인용하며 “과학자, 주치의, CDC(질병관리청 등) 등의 신뢰도가 높았고, 저널리스트를 가장 못 믿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10개국 공통 사항”이라며 “특히 끝(하위권)에서 네 번째가 뉴스미디어인데, 뉴스미디어보다 기자 개개인을 못 믿는 거다. 기자 개개인에 대한 불신이 많이 쌓여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알려진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의 조사를 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언론 이용도나 신뢰도가 높은 편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착시효과”일 수 있다는 근거도 제시됐다. 김 대표는 “서울대에서 공적 위기 대응 주체에 대해 세 차례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국립중앙의료원, 질병관리청, 공공 보건의료기관 등 대체로 우상향으로 나타났으나, 유일하게 계속 떨어지는 게 언론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언론계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역부족이라고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강 기자는 “(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생겨서 기자가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해석 없이 기사 쓰고 데스크는 별 문제의식 없이 내보내고 그래서 클릭 수가 나오고 하면 회사의 일시적인 매출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그 기자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런 식으로 기사 쓰면서 1년, 2년 소비되면 그 기자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역량이 강화될까?”라고 물었다.

강 기자는 “단기간에 언론이 자정될 것 같지 않다”며 “그렇다면 정부나 방역 당국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방역 당국이 계속해서 기자 보도나 속보에 끌려가고 수세적으로 해명하니 이런 보도가 계속 쏟아지는 것”이라며 “작년 가을을 생각해 보면 9~10월 초까지만 해도 독감 사망자 보도가 쏟아졌는데, 정은경 청장이 인과관계는 없고 선후관계 뿐이라며 강력한 리더십으로 끌고 가니까 대부분의 언론이 ‘깨갱’ 했다. 언론의 나쁜 버릇을 그런 쪽으로 견인하면서 이 시기를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형국 경향신문 보건복지부 출입기자 역시 방역 당국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조 기자는 “더 높은 단위에서 큰 결정 권한을 갖고 의사결정이 다 이뤄진 상태에서 집행권자라 믿었던 방역 당국은 결정된 게 없다고 말하고, 그런데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고, 이런 게 경험적으로 누적되면서 방역 당국 메시지의 신뢰도와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됐다”며 “방역 당국이 신뢰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국민 신뢰에 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백신, 코로나 관련 보도에 적극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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