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나흘 앞둔 지난 1일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 이틀간 최대적설량 90㎝(인제군)에 달하는 16년 만의 3월 폭설로 봄나들이에 나섰던 시민들이 눈길에 발이 묶여 고속도로에 8시간 동안 고립됐다. 이번 겨울은 기상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1973년 이후 기온 변동폭이 두 번째로 컸던 계절이었다. 서울은 지난 1월8일 영하 19도까지 떨어져 20년 만에 가장 추운 1월을 기록했다가 보름 뒤인 24일에는 영상 14도까지 올라 89년 만에 가장 더운 1월이 됐다. 같은 달에 기온차가 30도가 넘는다.
산업화와 함께 지구를 메우기 시작한 온실가스는 생태계 질서를 무너뜨렸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는 균형의 붕괴를 방증한다. 기후위기는 미래에 대한 기우가 아니라 현재의 재난으로 가시화됐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전하는 기후변화의 실상은 대부분 단편적이다.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장마와 폭염,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세간에 키워드가 떠오를 때면 무수히 많은 기사가 쏟아지다가도 금세 다른 이슈에 가려 사라지고 만다. 보도 건수는 늘었지만 분석의 깊이는 얼마나 깊어졌는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넘어 제대로 된 의제설정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국의 가디언은 2019년부터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기후 연구자들은 기후변화를 이미 논쟁을 넘어선 현상으로 규정하며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가열’, ‘기후변화 회의론자’가 아니라 ‘기후변화 부정자’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변화의 엄중성이 국가마다 다르지 않을 것인데 한국의 언론은 원인을 탐사하기보다 일회성으로 현상을 조망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에너지 전환을 비롯해 산업혁명 이후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의 습관과 인식을 바꿔 질서를 새로 조립하는 일이다. 시민들이 체감하기 힘든 부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보도 방식도 연구가 필요하다. 기후와 환경에 관한 보도는 일견 과학적 사고와 이성적 분석을 요하는 영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첨예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산업이 재편되는 경제의 문제이며, 노동이 변화하는 일자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영역인 만큼 취재와 보도 역시 다각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한겨레의 ‘기후변화팀’과 한국일보의 ‘기후대응팀’, 헤럴드경제의 ‘H.eco팀’ 등 전담팀을 구성한 언론사가 늘어나는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경제, 정치, 환경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려면 출입처로 나눠진 기존 취재 방식으로는 심도 있는 접근이 가능하지 않다. 각사의 전담 조직은 이런 한계를 깨기 위한 구상이다.
외국의 언론들은 개별 회사를 넘어 언론사 간 협업을 통해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과 탐사 보도 매체 ‘마더 존스’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 클라이밋 데스크’, 세계 470여개 언론이 동참한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는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한 언론의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위기의 심각성을 피상적으로 보도하는 한계를 극복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이다. 기후변화는 트렌드가 아니다. 사회적 공감대와 정책 전환을 이끌어 내야 하는 사회적 의제다. 특히 기후변화는 계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부국과 빈국의 격차, 세대 간 격차를 키워 불평등이 극대화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한국 언론도 이 위기를 막아낼 효과적인 보도를 고민해야 할 때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