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중간착취의 지옥도

[제365회 이달의 기자상] 남보라 한국일보 어젠다기획부 기자 /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남보라 한국일보 기자

처음에는 ‘중간착취’라는 말이 낯설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중간착취의 배제’(9조) 조항이 있었지만, 입에 잘 붙지 않았습니다.


용역·파견업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하면서 조금씩 윤곽이 그려졌습니다. 노동자를 고용한 후 원청의 일터에 보내는 것이 용역·파견업체가 하는 일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원청으로부터 받은 노무비에서 노동자 1인당 매달 수십 만~수백 만원을 ‘관리비’라는 명목으로 떼어갔습니다. 업무지원, 고충처리, 복리후생 등 회사로서의 의무는 외면한 채 돈만 챙겼습니다. 그렇게 떼어 간 돈은 용역업체 대표의 억대 연봉이 됐습니다. 이 관리자들은 원청에서 일하던 ‘낙하산’이거나 친인척인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선명합니다. 노동의 대가를 도둑 맞아 10년 차가 되어도 100만원대 월급을 받는 노동자, 최저임금이 올라도 식대 수당 교통비가 사라져 월급이 겨우 2만원 오르는 노동자들입니다. 하지만 가해자는 없습니다. 용역업체는 근로계약서 상 월급을 줬으니 됐다고 하고, 원청은 이 모든 불법과 부조리를 방조합니다. ‘중간착취’라는 말이 낯설었던 것은 언론이 자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 단어를 자꾸 말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템의 주인이자 팀원들을 끝까지 믿고 독려해준 이진희 어젠다기획부 부장, 신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월급을 밝혀야 하는 곤혹스러움에도 취재에 응해주신 100명의 노동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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