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비밀이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한국ABC협회의 사무감사 결과 얘기다. 문체부의 감사 결과 실제 신문 유료부수는 그간 공시된 수치의 절반을 겨우 웃도는 정도로 나타났다. A신문사의 2019년 유가율은 협회 자료에선 95.94%였으나 문체부 조사결과 평균 67.24%였다. B·C신문사 역시 실제 유가율은 각 58.44%와 56.05%로 절반 정도에 그쳤다. 사실 부수 부풀리기는 곪을 대로 곪았던 부끄러운 비밀이다. 비단 이 3개사만이 문제일까.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할 때다.
한겨레의 성숙한 대응은 인상적이다. 문체부 결과 발표 다음날 한겨레는 1면에 관련 기사를, 6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한겨레는 사과문에서 “협회의 유료 부수 인증 기준은 정가의 절반 이상만 받으면 유료부수로 인정하는 등 매우 느슨하게 운영됐다”며 “한겨레 부수도 정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자체적으로 발송 부수의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에 먼저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신문 부수 부풀리기는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자행되어온 게 사실이다. 결국, 돈 때문이다. 이 결과에 따라 정부가 집행하는 광고 예산 기준이 책정된다. 한국 신문업은 독자의 구독료가 아닌 광고비에 기업 매출 의존도가 높은 특성을 보인다. 광고 따오기 경쟁 과열이 부수 부풀리기로 연결됐다. 이유를 막론하고 해명의 여지는 없다. 신문업계의 자성이 필수다.
뼈아픈 자성과 함께 수치와 위기감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문업계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신문뿐 아니라 한국 전체 언론계는 혁신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ABC협회의 부수 집계는 사실 현행대로라면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 통계청 기준 현재 인구 5186만명인 한국에서 ABC협회가 밝힌 부수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뉴스를 전하고 소화하는 매체는 지면 아닌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된지 오래다. 유엔(UN) 기준 인구가 3억3200만 여명에 달하는 미국의 대표적 신문 뉴욕타임스(NYT) 역시 인쇄해서 유통하는 부수는 NYT가 지난해 11월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약 83만부에 불과하다. 이런 NYT를 지탱하는 것은 600만에 가까운 유료 디지털 구독 계정 숫자다.
한국은 어떤가. 모든 기사는 디지털로 통하는 상황에서, 정작 디지털 플랫폼의 기사의 유료화는 언감생심이다. 언론사 중 어느 곳도 선뜻 방울을 달 용기를 못 내고 눈치만 보는 중이다. 결과는 일선 기자들의 영혼 갈아넣기일 뿐이다. 마침 제기되는 디지털과 인쇄를 합한 통합ABC 제도에 대해서도 각 신문사들이 먼저 활발히 논의하고 제기할 필요가 절실하다. 물론 그전에 곪아 터진 부수 부풀리기 논란에 대해 스스로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는 것이 우선일 터다.
동시에 우리는 이번 사안의 과도한 정치화를 경계한다. 신문업계의 자정(自淨)은 말 그대로 스스로의 정화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여당 소속 의원들의 정치 이슈화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신문업계의 자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일부 의원들의 법적 조치나 특정사를 표적으로 삼은 공격이 아니다. 스스로를 개혁할 기회를 주고 개혁할 시간이 없다면 이번 부수 부풀리기 의혹은 시즌2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다. 신문업계의 개혁은 한국 민주주의의 올곧은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정치적으로 활용, 나아가 악용하려는 움직임은 퇴보만을 재촉할 뿐임을 분명히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