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댓글은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 ‘기레기’ 표현에 대한 첫 대법 판결이 나왔다. 인터넷 기사에 ‘기레기’라는 댓글을 달았다고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지난 2016년 이모씨는 자동차 관련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이씨는 홍보성 기사라고 비판하며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표현을 썼다. 기자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씨는 1심과 2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씨는 대법원에 상고했고 결국 무죄 취지의 결과를 받아낸 것이다.
대법원도 ‘기레기’가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한 맥락을 살펴봤을 때 위법성을 없애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했으며,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이고, 다른 댓글들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악의적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욕먹을 만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을 넘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혐오의 시대다. 피부색, 젠더, 종교, 성적 지향성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에서부터 언어와 물리적 폭력까지 문명 사회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야만적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 어떠한 유형의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맞을 짓을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때리고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들보다 더 세게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 폭력이 용인될 순 없다.
비단 기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판사, 의사, 종교인, 공무원, 정치인, 선생님 그 누구라도 직업에 쓰레기라는 단어를 붙여 표현한다면 어떤 맥락에서건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무뇌아’, ‘이중인격자’, ‘극혐’ 등의 댓글을 단 누리꾼들이 유죄를 확정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납득이 어렵다. 무죄는 유죄의 증거가 없는 것일 뿐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듯, 이번 판결 역시 형사처벌을 할 땐 법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관련 판결 내용을 다룬 기사들은 기레기라는 표현도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며 누리꾼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자칫 혐오가, 나아가 혐오로 인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공동체에 전달될 수 있다.
대법 판결보다 더 뼈아픈 건 여론 재판 결과다. 싸늘하다. 과했다는 반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법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비판을 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혐오를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공동체의 신망조차 얻지 못한 기자들이 무슨 염치로 좋은 저널리즘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터넷을 도배하는 어뷰징, 남발되는 단독, 베껴쓰기, 낚시 제목, 시대에 뒤떨어지는 출입처 및 취재 문화, 날로 높아지는 시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비 전문성, 그럼에도 공부하지 않는 게으름. 이번 판결 대상이 됐던 기레기 댓글 역시 홍보성 기사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작성됐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었다. 언제까지 스스로에게 ‘기자님’으로 칭해 달라 윽박지를 수만은 없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무엇도 당연한 건 없듯 스스로 역할을 못한다면 언제든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 언론의 태생적 숙명인 것이다. 돌아봐야 할 시점은 지나고도 한참이나 지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오늘 맞은 이 회초리의 쓰라림을 뼛속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