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 등의 발언으로 ‘여성 비하’라는 비판을 받고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이후 일본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성평등’에 관한 보도나 특집이 늘어나고 있다. 이웃나라 한국에서는 어떤지 나에게 한국의 ‘성평등’ 관련 취재 의뢰가 들어왔을 정도다. 나는 주로 영화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영화 촬영 전 성희롱 예방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한국의 선진적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2018년 서지현 검사가 자신에 대해 성추행을 했던 검찰 간부를 고발한 후 #MeToo(미투) 운동이 퍼지고 각계 유명인들도 잇따라 고발됐다. 미투는 세계적인 운동이었지만 일본은 조용했다. 일부 피해자의 고발이 있었지만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 평범한 여성이 겪는 아픔을 표현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국 친구들한테 “왜 일본은 김지영은 팔리는데 미투는 안 퍼져?”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이는 일본에서도 성평등에 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참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의 미투와 그 후가 궁금한 것이다. 나는 한국 영화계의 미투와 그 후에 관한 원고를 쓰거나 강연을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업계나 작품의 변화의 대해서는 영화를 보거나 뉴스나 관계자의 이야기로 어느 정도 일본에 전할 만한 정보가 있다. 그런데 여러 미투 사건에 대한 그 후는 뉴스를 찾아봐도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김기덕 감독이 작년 12월에 사망했을 때 일본에서 제대로 안 알려졌던 그의 미투에 관한 부분을 쓸 필요가 있어서 과거의 보도까지 찾아봤다. 한국 영화계가 등을 돌리고 한국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져서 해외로 나갔다 등의 내용은 나오지만, 여러 고발의 결과는 보도를 봐도 명확하지 않았다. 김 감독이 자신을 고발한 여배우와 이를 보도한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패소했다는 뉴스는 나오지만 김 감독을 포함해서 영화계에서 그렇게 많은 고발이 있었는데 ‘피해자의 구제’라는 면에서 일본에 전달할 만한 정보는 적었다.
물론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막기 위한 여러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긍정적인 결과다. 그렇지만 언론은 고발된 사람을 비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구제’라는 관점에서 고발 후 개별 사건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보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에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건 목소리를 내고 불이익을 받느니 참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 미투로 가장 알려진 사건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방송국 기자한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인데 형사 쪽은 혐의 불충분으로 끝났고 민사소송에서 이토가 이겼다. 그는 피해와 수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렸는데 읽은 사람이 고발할 용기를 얻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래서 더 미투 선진국 한국에서 목소리를 낸 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학교폭력 폭로가 잇따르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이 고발되고 사과하는 뉴스가 연일 나오지만, 학폭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보도가 없으면 자극적인 뉴스가 소비될 뿐이다. 미투도 학폭 폭로도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기 위해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