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장인의 기록>은 창사 50주년을 맞은 MBC충북이 만든 기록 다큐멘터리다. 무려 17부작을 기획했는데, 일단 두 편을 만들어 방송을 냈고 올해 세 편째를 만들고 있다.
내용과 구성은 단순하다. 지역 무형문화재가 자연에서 재료를 채취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공정을 세세히 보여주는데,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인생 역정, 말 그대로 장인의 기록을 작품 공정 사이사이에 교차 편집한다.
취재 기자가 연출하고 영상 기자가 촬영과 편집을 맡았다. 자극적인 영상도 화려한 이야기도 없어 자칫 지루하기 쉽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혼신을 다하는 무형문화재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지고, 정겨운 사투리를 듣고 있노라면 편안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유행하는 강렬한 마라 맛이 아닌 할머니 손칼국수 맛이라고 할까.
“지역 문화 없는 지역 문화방송”
시작은 2017년 파업이었다. 장기 파업에 들어갔고, 지역 문화 인사들을 초청해 문화재를 연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지역 인사는 이렇게 쓴소리를 했다. “지역 문화방송 뉴스가 지금껏 지역 문화를 다루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문화 없는 문화방송이었다.”
왠지 모를 울림이 있는 말이 귀를 떠나지 않아 파업에서 복귀한 2018년 초에 바로 기획을 시작했다. 키워드는 ‘지역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역 문화.’ 고민을 거듭하다 찾은 소재가 무형문화재였다. 3~4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무형문화재 작업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뉴스 시간에 내기 시작했다.
초점을 맞춘 것은 초고화질 영상과 아름다운 색감,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백 년 후에도 볼 수 있도록 영화 촬영용 장비로 제대로 한 번 찍어서 남기자는 취지였다. 예산도 없는 상태에서 장비는 ‘데모’로 빌렸고, 진행비가 없어 사비를 털어가면서 촬영을 이어갔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큰 상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짧은 영상은 다시 다큐멘터리로 바뀌게 되었다. 뉴스 영상을 본 충청북도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했던 무형문화재 영상 기록화 사업을 10년 만에 재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기록화 책자를 발간하고 MBC충북이 기록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업무 협약을 했다. 예산과 장비를 이번에는 제대로 갖춰서 만든 결과물이 다큐멘터리 ‘장인의 기록’이다.
“한길만 걷는다는 것, 목숨을 건 처절함”
선천적인 소아마비로 남들보다 걸음이 늦었지만, 최고의 손기술로 화살 장인이 된 양태현 궁시장(1편 주인공). 간암에 걸려 부작용으로 신장이 망가지고, 한쪽 눈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벼루를 포기하지 못하는 신명식 벼루장(2편 주인공). 부족한 연출력과 촬영 능력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장인들의 인생사는 드라마틱하고, 작업 과정은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역 무형문화재는 평균 연령이 70살이 넘을 정도로 고령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반복적인 노동 탓에 대부분 건강도 좋지 못하다. 실제로 충북에서는 최근 3년 사이에 다섯 명이 잇따라 영면에 들어갔고, 상당수는 기술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 ‘장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끊임없는 반복과 숙련이 필수이며, 오직 한길을 위해 다른 것들은 포기하는 ‘목숨을 건 처절함’도 필요하다고 한다. 돈이 되지 않는 전통에 목숨을 거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큐멘터리 ‘장인의 기록’의 가장 큰 목적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기록이다. “왜 기자가 이런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사라져가는 지역 문화를 기록하는 것 또한 지역 기자의 일이 아니겠냐고 답하고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토록 처절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준다면, 우리 전통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느껴준다면, 더디고 긴 다큐멘터리 촬영과 편집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 ‘지역 속으로’는 지역의 여러 이슈와 지역민의 삶을 차별화된 시각으로 다룬 지역기자들의 취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