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 없는 보궐선거 보도, 언론도 고민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고(有故)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퇴에 따른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7일 치러진다. 새로 뽑히는 시장의 임기는 1년 2개월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도와 제2 도시를 책임지는 단체장 선출이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정치적 비중은 적지 않다. 이와 함께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두고 있는 주요 정당들이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점, 여러 정당들이 내년 대선에서 내놓을 정책의 청사진을 사전에 유권자들에게 공개하는 선거라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이번 선거가 단순히 단체장의 궐위에 따른 보궐선거로만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유권자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언론의 역할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주요 정당의 시장 후보군 윤곽이 나온 지난 1월 중순부터 3개월 가까이 이번 보궐 선거를 다룬 언론이 과연 얼마만큼 자신의 역할을 했는가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부정적이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지적했던 선거보도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이번에도 되풀이됐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여론조사에서 어느 후보가 앞서고 어느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가에 초점을 맞춘 경마중계식 보도, 정책과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기보다는 주요 후보자들의 동선을 쫓아다니기에 급급한 인물 중심보도, 거대 정당 후보의 언행에만 집중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특히 원내 1·2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정해지지 않았던 선거전 초반에는 각 정당이 어떤 정책적 비전을 갖고 있는지보다 누가 후보자가 될 것인가라는 점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언론시민단체들로 이뤄진 ‘2021년 서울시장보궐선거미디어감시연대’(미디어감시연대)가 2월22일~3월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 6개 중앙 일간지의 보궐선거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동안 후보 단일화를 언급한 보도가 정책을 언급한 보도의 2배나 됐다. 특히 단일화 관련 보도 중 70~80%가량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간 야권 단일화 보도였다. 이는 언론이 서울시장 선거 자체보다 내년 대선과 관련된 정치 구도의 변화, 각 정당의 정치적 셈법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단일화에 대한 유권자의 높은 관심을 감안하면 단일화 문제에 보도의 비중을 두는 건 불가피하다고 해도 정책의 단일화 여부가 아닌 정치공학적 결합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구태의연한 보도는 여전했다.


선거 때면 으레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혐오·차별 발언에 대한 언론의 안이한 대응도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안철수 대표의 명백한 차별적 발언을 ‘중도표를 의식한 전략적 발언’이라고 정치적 유불리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거나 안 대표를 향해 “내가 보기에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을 장애인 차별 표현으로 지적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 발언’, ‘격한 표현’ 으로 언급하는 보도가 대표적이다(미디어감시연대 보고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높아진 소수자 차별에 대한 대중들의 높아진 언어 감수성을 언론이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기관장들이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 문제로 열리게 된 선거인 만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역대 최다인 5명의 여성후보가 나왔다는 점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와 무관하게 이번 선거의 역사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편중된 관심이 아닌 여성 정책에 대한 심층보도가 나와야 하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선거 기간 막바지까지 독자들 머릿속에 남은 건 ‘생태탕’이었다.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으면서도 의미 있는 선거보도를 해야 할 언론의 고민은 더 깊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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