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에 야채가게를 찾았을 때만 해도 명절 효과인 줄 알았다. 대파 한 단이 6000원이 넘었다. 한 뿌리만 팔 수 없냐고 너스레를 떨다가 결국 쪽파를 들고 왔다. 대파 대신 쪽파라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명절이 지나고 3월 들어서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 가도 8000원이 넘는 가격표에 선뜻 장바구니에 넣을 수가 없었다. 1년 전만 해도 대파 가격이 폭락하면서 산지에서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다. 지금의 대파 대란이 기후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관측 이후 가장 긴 장마가 이어졌다. 보통 6월 하순쯤 시작해 한 달 정도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지난해는 무려 54일간 끝나지 않았다. 기상청 예보관과 통화할 때마다 언제 장마가 끝나는지 지겨울 정도로 묻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극한 장마였고 베테랑 예보관도 두려울 정도의 폭우였다.
지난여름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에 과연 날씨가 대파 값을 3배 이상 폭등하게 한 진짜 원인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목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 대파 재배 면적의 30%는 전남지역에 집중돼있는데, 특히 신안 임자도는 토질이 좋고 날씨가 온화해 겨울대파의 최대 산지로 꼽힌다. 임자도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파밭이었다. 3월 취재 당시 막바지 겨울대파 수확이 한창이었는데, 농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대파 가격이 급등한 것은 재배 면적이 줄고 출하량이 줄어든 데 있었다. 지난 4~5년간 대파 값이 바닥이었고 도매가는 1kg에 1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수억씩 빚더미에 앉게 된 농가들은 아예 재배를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또 출하량이 전년 대비 절반 정도 줄어든 것은 실제로 날씨의 영향이 컸다. 길어진 장마로 습해에 약한 대파 뿌리가 썩고 물러지는 무름병이 유행했다. 연이은 태풍으로 대파밭이 물에 잠기고 비바람에 대파가 휘어져 폐기하는 일도 잦았다.
12월부터는 초겨울 추위가 만만치 않았다. 폭설까지 잦아 수확을 앞둔 대파밭은 동해 피해를 입었다. 겨울대파는 봄에 심어 이듬해 겨울에 수확하는데 지난해는 하늘이 농사를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임자도 대파는 흰 부분이 평소 40~50cm까지 자라지만 올해는 30cm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짧아졌다. 대파의 굵기도 가늘어져 1kg 한 단을 묶으려면 과거 10개 정도면 됐는데, 올해는 20개를 묶어야 같은 무게가 나온다고 했다. 대파의 생육이 그만큼 부진하다는 뜻이다. 실제 기상청을 찾아 대파 산지의 기후를 살펴본 결과도 농민들의 말과 일치했다. 지난여름 전남지역에는 1년 강수량의 70%에 달하는 1000mm 안팎의 비가 쏟아졌다. 겨울에도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일이 드문 임자도지만 1월8일에는 영하 12℃의 한파가 찾아오기도 했다.
한해 농사는 날씨가 ‘팔 할’이라고 할 정도로 날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변동성이 크고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날씨 속에 농사짓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거라고 농민들은 한숨이었다. 비단 대파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내년은 배추, 양파 대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대파를 키워 먹는 ‘파테크’가 유행했듯 또 키워 먹으면 될까? 모든 농작물을 키워 먹을 수는 없는 만큼 기후위기 시대 농업의 생존을 위한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