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난다. 기자 이탈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5~10년차가,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그동안 주로 중견기자들이 이동했던 홍보담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새로 포착된 기자들의 이직 양상은 언론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아 있는 이들에겐 과제가 됐다.
이달 초 연합뉴스 7년차 기자가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직방’의 PR팀장으로 이직했다는 글이 돌아 기자사회가 술렁였다. 특히 연합뉴스는 언론사 처우 측면에서 임금이 높은 축인 데다 정년을 보장하는 조직문화 등으로 취재기자의 이직이 드문 곳이다. 한창 취재현장을 누비던 젊은 기자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는 소식에 연합뉴스는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연합뉴스 한 기자는 “연합 기자가 스타트업으로 간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5~10년차 이직 자체도 드물다”며 “다들 놀랐다. ‘왜 거길 가느냐’는 반응도 많았다”고 말했다.
위 사례처럼 ‘스타트업, 5~10년차, 홍보담당’은 요즘 기자 이직의 새로운 흐름이다. 보통 언론사에서 다른 기업으로의 전직은 일찌감치 ‘기자는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느끼고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거나, 차장 이상 중견이 됐을 때 기업 홍보팀의 리더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5~10년차에게 언론사란 ‘성장 가능성 없고 답답한 조직’
지금 양상은 과거 이직 공식과는 차이가 있다. 최근 동아일보에서도 금융 플랫폼 스타트업 ‘토스’로, 서울경제에선 변호사 중개·법률 이슈 관련 스타트업 ‘로톡’으로, 한국일보에선 정혜승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론칭할 뉴미디어 스타트업으로 5~10년차 기자가 이직했다. 한 언론사 7년차 기자는 “요즘 다른 기업 이직시장에서 제 연차 기자들이 인기가 많다. 부서 3군데 정도를 돌면서 언론계 생리를 파악했고, 일반 회사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라며 “언론사 내부로 보면 여기 남아 부서를 옮겨 다니며 승진할 것인지, 기자 경험을 살려 새로운 분야에서 새 출발할지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들이 기성언론사를 떠난 덴 개인적인 이유도 작용했지만, 언론사 안팎의 환경 변화와 조직 내부의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 1~2년 사이 언론사에서 스타트업으로, 기자에서 기업 홍보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답답함’과 ‘성장’을 자주 언급했다. 언론사 기자였을 때 답답했고, 그 안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A씨는 “기성 언론사가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저 같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기자들에겐 너무 잘 보인다. 기자 일은 여전히 가치 있지만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에겐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구조”라며 “언론사에 남았다면 부팀장도 못할 연차인데, 스타트업에선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B씨에게도 ‘성장 가능성’이 주요한 지표였다. B씨는 “기성 언론사 조직은 개개인의 성장을 더디게 만든다. 연차가 쌓여도 계속 어느 부서의 말진이라면 말진 역할만 할 수 있다”며 “이 사회는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인데 기자로 살다보니 종합지 10개, 통신사 3개, 방송사 7개 이런 세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불안하지만 개인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이 크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동아·연합·한국 등서 잇따라 이직… 중견들 주로 가던 홍보담당으로
현재 디지털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기자들의 이탈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 이들의 이직은 또래 기자들에게 부러운 일이 되고 있다. 주요 언론사의 한 기자는 “언론은 사양산업인 데다 디지털에서 속보 경쟁은 갈수록 의미가 없어지지만 스타트업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라며 “최근 비슷한 연차들이 언론사를 떠나는 걸 보면 그만큼 언론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 기자들이 많다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홍보업무를 하고 있는 전직 기자 C씨는 “언론사 조직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씨는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기사를 쓰고, 제 이름을 달고 나가기 부끄러운 기사가 생기면서 여길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들 디지털, 디지털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 없이 쫓아가는 데 급급하다 보니 기자들이 소모되는 것 같다. 윗선이 꼭 정답을 제시해주지 못하더라도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지고 리드한다면 지금 같은 혼란과 기자들의 고민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