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이슈에서 언론의 역할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설파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후위기가 몰고 올 산업생태계의 변화를 포착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 또한 언론의 책무다.
한국 언론은 기후위기 시대의 책무를 다하고 있을까. 방향 제시는커녕 변화를 막는 장벽이 되진 않았나. 매일경제는 4월12일자 <석탄발전 수출, 이젠 금융지원 없다(1면)>에서 정부가 곧 있을 기후 정상회담에서 해외석탄발전에 대한 금전 지원 중단 방침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선 이번 결정이 석탄발전 산업생태계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여름에도 비슷한 보도가 있었다. 한국전력의 해외 석탄발전사업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다. 정부 지원을 막으면 ‘친환경 기술 경쟁력’을 가진 석탄발전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란 보도가 경제지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일련의 보도에 힘입은 한전은 사업을 강행했다. 지난해 6월과 10월, 한전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초대형 석탄발전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공적금융기관에서도 2조5000억원가량의 대출을 결정했다.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정말 정부 지원 유무가 석탄발전 산업의 흥망을 좌우할까? 그렇지 않다. 이미 전 세계 석탄발전 시장은 오래전부터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파리협정이 채택된 2015년 95GW에 달했던 석탄발전 시장규모는 2019년 17GW로 급감했다. 불과 4년 만에 5분의1 수준이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 가격 하락과 함께 늘어난 석탄발전 환경규제로 발전원간 경제성이 역전된 게 주된 이유였다.
시장 변화에 기민하지 못했던 기업은 존폐 기로에 섰다. 지난해 초 구제금융을 받은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이다. 두산중공업의 전체 수주액은 2015년 5조6000억원에서 3년 만에 2조7000억원으로 급감했는데, 전체 수주액의 90%가량을 차지했던 석탄발전 수주액이 5조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줄어든 게 주효했다.
그래서 작년 정부의 석탄발전사업 지원 논쟁은 국내기업의 산업경쟁력에 관한 게 아니었다. 국민 혈세를 담보로 석탄발전 산업에 ‘산소 호흡기’를 붙일 것인지의 문제였다. 작년에 추진된 두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도합 1100억원의 적자를 한전에 안겨줄 것으로 예상됐다. 현지 석탄발전소의 좌초자산화로 인한 공적 금융의 대출금 상환 위험도 제기됐다.
공적자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새로운 발전 시장을 선점할 기회는 그만큼 멀어진다. 한전과 두산중공업에 베트남 사업을 넘겨준 중화전력공사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사는 기다렸다는 듯 탈석탄 선언으로 새로운 시장 흐름 변화에 합류했다.
전 세계 시장은 재생에너지로 돌아선 지 오래다. IEA에 따르면 2018년 전력 관련 투자금의 77%(약 670조원)가 신재생에너지와 계통투자로 몰렸다. 석탄과 가스 등 화력발전에 투자된 금액은 16%에 불과했다.
더 큰 파도가 오고 있다. 석탄 다음은 석유·가스다. 영국은 지난해 말 공적 금융의 화석연료 투자중단을 선언했다.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 첫날, 석유·가스 시추를 위한 국유지 임대를 금지했다. 석유기업 BP는 2019년을 석유 수요의 정점이었다고 평가하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계획 중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석탄 지원 중단과 유사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던져질 수많은 질문들 속 한국 언론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답을 할 수 있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