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일부 독감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날이 추워지는데 독감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부작용신고가 속출했다. ‘83세 노인, 백신 접종 후 사망’ 같은 기사가 줄을 이었다. 불안감은 가중됐고 접종을 주저하는 어르신들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독감에 맞고 사망한 110명의 노인 중 독감접종과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0’건이었다.
독감 백신을 맞고 노인이 사망했으니, 이는 보도할 가치가 충분히 높을까? 지난해 국내에서 사망한 65세 이상 전체 어르신은 20만 4000여명이다. 이중 절반 정도가 독감 접종을 했다. 그럼 ‘지난해 노인 10만 2천000명, 독감 백신 맞고 사망’ 이 표현은 맞는 표현일까?
시간이 지나 이제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이 도마에 올랐다. 백신의 부작용을 검증하고 알리는 일은 지금 우리 언론의 매우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자극적이며 비과학적인 표현은 또 도를 넘는다. “백신접종 후 사망자 15명 모두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후 사망….”
이 논리대로라면 올 4월 중순까지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사망했다고 신고된 사례는 3486명(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이다. 미국은 주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접종한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화이자 백신 맞고 @천명 사망”이라는 큼지막한 기사 제목을 걸지 않는다. 4월 중순까지 미국인은 2억1000회의 백신을 접종했으니 이들 모두 인과관계가 입증된다고 해도 사망률은 0.0016%다. 그런데 우리 언론만 보면 백신 맞고 ‘운 없으면’ 죽을 것 같다. 덕분에 우리 국민 상당수는 ‘전쟁터에 가는 마음가짐’으로 백신을 맞고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서둘러 준비된 코로나 백신은 실제 여러 부작용을 동반한다. 미국에서 존스앤존슨 백신을 맞은 9명이 심각한 혈전 증세가 있다고 보고됐다. 하지만 미국언론이 “존슨앤존슨 백신 맞은 9명, 심각한 혈전 증세”라고 제목을 뽑을까. 확률로 보면 0.0001%가 조금 넘는다(CDC). 그래서 존슨앤존슨 백신의 접종을 중단하거나 조금 늦추는 것이 해답일까?
공교롭게 우리가 주로 도입하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유럽에서도 부작용이 크게 논란이 됐다. 독일에서도 한때 접종이 중단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믿을 것은 과학뿐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발표한 백신 부작용 비율을 보면 △아스트라제네카 0.55% △화이자 0.16% △모더나 0.11% 등 모두 1% 미만이었다. 증상도 대부분 경미했다.
하지만 우리 언론에선 과학적 통계 대신 ‘사망’이나 ‘전신마비’같은 무서운 제목이 먼저 등장한다. 불안감이 커진다. 불안감은 잘못된 여론으로 번지기 쉽다. 코로나 백신은 비오는 날 야구장을 찾는 것처럼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막대한 기회비용이 따라온다.
빗나간 여론은 과학을 통해 다가오지 않는다. 대중의 분노에 그럴듯한 거짓말을 섞는다. 14세기 콜레라가 범람하자,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지목했다.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됐다. 수백년이 지나 다시 바이러스가 범람했다. 인류는 얼마나 과학을 신봉할까? 빌게이츠 등 억만장자 8명이 미세 마이크로칩이 들어있는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믿는 미국인들이 많다. 여기서 바로잡지 않으면 어리석은 믿음은 여론이 된다. 그 여론은 정치가 되고 정치가 과학을 이기면 국민은 불행해진다. 우리 언론은 과연 이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시골의 노모께서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걱정하신다. “백신을 맞고 너무 많이 죽는다”며 성당 친구분들 상당수가 접종을 안하기로 했단다. “노인들은 백신을 맞는 게 안 맞는 것 보다 분명하게 더 좋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참고로 독일의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메르켈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문재인 대통령 모두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했다. 아스트라제네카를 맞기로 했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그 전에 코로나에 확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