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산업화된 매스 미디어는 영화였다. 미국 최초의 영화 제작자였던 토마스 에디슨이 세운 영화사는 1910년대까지 미국 영화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퉜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꽃피운 것은 영화 산업 아웃사이더였다. 모피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아돌프 주커(Adolph Zuckor)는 희가극을 공연하는 극장을 운영했다. 당시 태동하던 영화를 상영하면서 그는 관객들의 선호와 공급되는 영화간 괴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소유 극장 4곳을 팔아버리고 3년간 전국을 돌며 영화 관객의 반응을 관찰했다. 일종의 관객 데이터를 수집한 것이다. 그는 내러티브와 스타가 있는 장편 영화에 관객들이 압도적으로 환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912년 영화 배급 및 제작사를 차려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관객이 많이 들어도 입장료 수익이 극장주나 배급사에게만 돌아가면 제작자는 망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던 그는 당시 신흥 플랫폼으로 부상하던 영화 전용 극장도 사들였다. 콘텐츠 차별화와 유통 플랫폼 장악을 병행해 입장료 매출이 제작비로 회수되도록 한 수직 계열화는 당시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주커식 게임룰로 과점을 이룬 메이저 영화사들은 모두 1910년대 이후 진출한 외부자들이었다.
이제 할리우드는 OTT의 대변혁을 겪고 있다. 1910년대 혁신가 주커가 세운 파라마운트의 OTT 서비스(파라마운트 플러스)는 디지털 시대 지진아가 됐다. 흥미롭게도 OTT 게임룰 역시 할리우스 아웃사이더 넷플릭스가 세웠다. 소프트웨어 벤처 기업가가 동영상 엔터테인먼트 게임룰을 뒤집고(넷플릭스), 온라인 광고 벤처 사업가가 음악 산업을 뒤바꾸며(스포티파이), 대학 및 대학원 중퇴 컴퓨터 공학도가 뉴스 비즈니스를 파괴(구글과 페이스북)하고 있다. 국내 미디어의 디지털 선도자들(네이버와 카카오)도 모두 전통 미디어 산업에 몸담은 적이 없던 공학도들이다. 신기술의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고, 소비자 니즈와 시장 공급간 괴리를 파고들어, 게임룰을 뒤집을 만큼의 장기 투자를 실행에 옮긴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통 미디어 산업 경험자들을 영입해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결합에 성공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뉴스 업계에는 경계를 넘나드는 혼종이 희귀하다. 그래서인지 아웃사이더를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한 신문사에 영입돼 화제가 됐던 엔지니어 출신 CTO가 사직했다는 소식이다. 앞서 비슷한 갈등을 겪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혼종 혁신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편집국, 기술국, 광고와 마케팅 등 3개 그룹간 경계를 넘나들며 상품 전략, 우선순위 조정, 데이터 수집과 분석, 검증 등을 총괄한다. 편집국의 배타적 문화를 뚫고 디지털 전환을 내적으로 이루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미국과 영국의 49개 뉴스 회사의 271명 프로덕트 매니저를 분석한 최근 논문은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의 경우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테크 기업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인력이 흘러가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대형 언론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를 거친 인력들이 뉴스 산업 전반으로 퍼지면서 혁신이 확산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게임 룰 전환기의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간 결합은 역사적 패턴이다. 자기 주관 없이 뉴스를 수집하는 신흥 직종 ‘기자(reporter)’의 첫 고용을 ‘충격적’이고 ‘역겨운 일’이라고 쓴 1840년대 언론인의 기록을 환기하는 게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