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은 매일같이 성차별과 혐오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와 기획물과 외고를 쏟아내는데 콘텐츠 지향점과는 다른 정반대의 사업을 운영 중인 것은 큰 모순이다.”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와 젠더위원회가 지난 12일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미스코리아 대회 사업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최근 미스코리아 서울 예선에서 2년 전 폐지하기로 했던 수영복 심사가 부활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참가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무대에 서지는 않았으나 비키니 영상 화보가 상영됐다. 수영복 심사를 없앤 첫해인 2019년 대회에서는 전년도 수상자들의 ‘한복’ 패션쇼가 선정성 문제를 일으켰던 것과 비슷한 논란을 야기했다.
1957년부터 한국일보가 주최해온 미스코리아 대회는 올해 65회째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성 상품화한다는 지적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가 처음 열렸던 것이 이미 22년 전인 1999년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당시 ‘이달의 나쁜방송’으로 MBC의 미스코리아 중계방송을 선정하며 “획일적인 미의 기준, 외모지상주의 조장, 여성 상품화 등 많은 비판을 받는” 대회를 “공중파 방송사가 생중계함으로써 미인대회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미인대회 폐지 요구가 커지면서 2002년 지상파 중계가 중단됐다. 미스코리아를 통해 한국 사회의 성차별과 성 고정관념 문제를 환기한 ‘안티 미스코리아’도 역할을 마치고 2004년 마지막 행사를 치렀지만 15년이 지난 2021년에도 미스코리아 대회는 열린다.
여성의 신체와 외모의 기준을 정해 순위를 매기는 대회는 존재 자체로 성차별적이다. 미스코리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역과 지역 특산물을 홍보한다는 명분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을 투입해 열었던 각종 ‘아가씨 대회’는 2000년대 초반 100여개에 달했다. 각종 대회의 당선자들이 지역 ‘홍보’를 위해 전국의 언론사를 차례로 방문하는 것은 연례행사가 됐다. 그때마다 ‘아가씨’ 혹은 ‘선녀’가 “본사를 방문했다”는 설명 외에 별다른 내용 없이 여성들을 마치 화보처럼 소비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과거보다 줄었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관행적인 기사들이다.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은 “언론은 사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성을 상품화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미인대회를 중계하고 여성 수상자들의 이미지만 차용해 작성한 기사는 이 준칙에 부합하는가.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성명에서 “‘성상품화 논란을 줄여 나가겠다’는 (회사의) 공언은 미스코리아 대회를 고집하는 한 지킬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겠다는 대회의 근본적인 취지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성명은 또 이를 “시대적 가치에 배반하는 전통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답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폐지 혹은 완전한 결별뿐”이라고도 했다.
‘n번방’ 사건과 위력 성폭력 사건 등을 거치며 사회의 높아진 성인지 관점에 따라 언론 역시 성숙한 보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 젠더 데스크 등은 왜곡되지 않은 평등한 인식으로 젠더 균형을 잡기 위해 만든 장치다. 남성 중심적이었던 언론사 문화가 낳은 관행이 저절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 역할과 편견이 언론을 통해 강화됐던 관행을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오래된 사업이라서, 또 오래된 보도 관행이라서 놓지 못할 미인대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