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공개가 없었다면 박근혜 탄핵도 없었다

[이슈 인사이드 | 법조]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근본적인 원동력은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전 국민적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수백만의 목소리가 탄핵이라는 헌법적 절차로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탄핵소추가 없었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도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고,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정이 선고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당시 무엇을 근거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청구할 수 있었을까? 2016년 12월9일 의결된 탄핵소추안 43쪽과 44쪽에는 탄핵소추의 기초가 된 ‘증거’의 목록이 나와 있다. 21개 항목이다. 이 가운데 핵심 증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인물 8명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다. 나머지 증거는 헌재와 대법원 판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문, 그리고 언론 기사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내용의 90% 이상은 검찰의 공소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만약 지금 법무부의 방침처럼 2016년 당시 법무부가 최서원(옛 최순실)씨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이 열리기 이전에는 국회에 공소장을 제출할 수 없다고 버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의 탄핵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서원(옛 최순실)씨에 대한 공소장이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면 촛불집회가 정점에 이르렀던 2016년 12월에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작성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서원씨에 대한 첫 공판은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인 2017년 1월5일에 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근거해 작성됐다는 것, 달리 말해 공소장 공개가 없었다면 탄핵소추안이 제때 의결되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공인에 대한 공소장’의 공개 필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들의 구체적 혐의,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그 밖의 여러 고위공직자들의 다양한 비위 혐의 등 역시 그동안 공소장 공개를 통해 상세한 내용이 알려져왔다. 이들의 공소장이 공개됐을 때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공인(public figure)’의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피고인의 명예권과 방어권,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적인 인물에 대한 정보공개 가운데 공개 대상자의 명예권이나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범죄 의혹과 관련된 정보공개일 경우 방어권도 일정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인’에 대한 정보공개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의사결정의 최종적 주체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공적인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고, 따라서 공적인 정보에 대한 알권리라는 사회적 이익이 클 경우 공인의 명예권 등을 일정 부분 제약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인에 대한 공소장 공개 역시 이런 기준에 따라서 당연하고도 정당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2월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비판하면서 “법무부가 내놓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며 “청와대 전직 주요 공직자가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건 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나 피의사실 공표 우려가 국민의 알권리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소장 국회 제출에 반대하고, 공소장 내용에 대한 보도에 유감을 표명하고 있는 추미애 전 장관과 박범계 장관도 과거에는 공소장 공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추미애 전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이 한창 불거질 당시인 2016년 11월과 12월에는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도 전에 네 번이나 “검찰의 공소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공소장보다 훨씬 내밀하고 구체적인 증거인 ‘정호성 녹음파일’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던 박범계 장관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추미애-박범계 두 사람 모두 공인에 대한 공소장을 공개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공익이 이로 인해 제한되는 개인의 명예권 등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 틀림없다.

 

알권리에 대한 기준이 정치상황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때, 2017년 국정원 적폐청산 사건 때,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때, 2019년 사법농단 사건 때, 공소장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면, 공소제기의 대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기준은 동일하게 유지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당한 행위였던 ‘공인에 대한 공소장의 공개’가 갑자기 “야만적이고 반헌법적 작태”(추미애 전 장관의 표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알권리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달라진다면 공적인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에 기초해 작동하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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