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입법, 더 미루지 말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80년 5월 광주를 기억한다. 언론은 시민 편이 아니었다. 진실이 권력의 총칼에 가려졌다. 고립된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에 맞서 외롭게 항쟁을 벌였다.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41년이 지난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떤가. 정치권력과 언론 사주권력으로부터 언론 독립을 이뤄냈는가. 임기가 1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는 언론개혁 약속을 지켰는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약속한 언론개혁 공약은 지금 공허하다. △언론 독립성 보장을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보도·제작·편성과 경영분리 △방송의 자본 독립 △지역방송·신문 지원예산 현실화 약속을 몇 가지나 지켰나.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언론정책 없는 게 언론정책이다’는 말을 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정권교체 하고나니 마음이 바뀐 것인가. 민주당은 제도적 개혁 요구는 묵살한 채,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꺼내 들었다. 시민들의 언론 피해 구제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를 본때 보이겠다는 의도로 의심받고 있다. 일부 언론이 진영 논리에 휩싸여 사실을 비틀고 왜곡하는 심각성엔 우리도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언론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개혁 입법을 대체할 만큼 급한 문제인지는 동의하기 어렵다.


올 하반기에는 공영방송 리더십 교체 등 굵직한 현안이 대기하고 있다. KBS 이사 교체와 사장 선임, MBC 방문진 이사 교체 등이 이어진다. 지배구조 개편 없인 이사회 구성을 놓고 충돌이 불가피하다. 현행 방송법은 집권여당 뜻대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고 사장을 뽑는 구조다. 방송이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고 시민이 참여할 제도개선을 위해 법 개정에 당장 나서야 한다.


신문의 편집권 독립 또한 건강한 저널리즘의 기반을 쌓는 일이다. 현행 신문법에 임의 규정으로 돼 있는 편집위원회 설치를 모든 언론사에 의무 규정으로 바꾸는 일은 신문 사주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 편집권을 지키는 보호 장치다. 존폐 위기에 내몰린 지역 언론이 지속가능한 미디어로 기능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한시가 급한 일이다.


급박한 언론 현안이 있는데도 정부여당의 언론개혁 입법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되레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보도에 눈을 치켜뜨고, 사실보다 의견을 내보내는 일부 매체를 떠받들며 정론지로 내세운다. 본인들에 우호적인 언론을 편드는 자유를 막을 까닭은 없지만, 180석을 가진 거대여당과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자유도 소중한 가치다. 가짜뉴스를 막고 포털뉴스 생태계를 건강하게 바꾸는 일 또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언론계 이슈를 보면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정부여당에 촉구한다. 언론계의 복잡한 현안을 다루는 데 ‘선택적 정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 편은 옳고, 상대편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거대 언론 권력을 앞세워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언론의 영향력은 시민이 공감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시민들도 사실과 거짓을 가려서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정부여당은 이제라도 언론계의 4대 개혁 입법 요구에 귀 기울여 언론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에 더 집중하기 바란다.


시민사회단체들이 25일 ‘언론개혁 촉구 비상시국선언’을 했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권력이 약속을 배반하고 정치가 책임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다시 광장에 설 것이다.” 무서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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