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참여 선언도 하지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이 사퇴했다고 하는데, 황당하다. 그 주인공이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사실은 이 블랙코미디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제 직업윤리의 상실은 한국형 정치드라마의 필수요소가 되었는데, 언론이 약방의 감초로 매 순간 등장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검찰총장이 ‘검수완박’을 핑계로 직을 던지고 대선 출마를 ‘간보기’하는 현실은 직업윤리의 파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의 정치적 사퇴를 ‘범이 내려온다’에 빗대며 포장하기 바빴던 보수언론은 마찬가지로 현직을 던지고 캠프로 직행하는 논설위원의 사례를 또다시 만들어냈다.
그나마 검찰총장에겐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높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곧 사퇴하고 대권에 도전한다는 감사원장의 경우는 명분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내세울 건 ‘스토리’인데, 정권의 탈원전 감사에 대한 조직적 반대는 이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여당은 감사원장과 동서지간인 현직 언론인과 그가 소속된 언론사가 뭔가 ‘기획’을 한 게 아닌가 의심했다. 감사원장이 마지막까지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길을 택한다면 이런 의심은 ‘억측’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 뛰어든다면 앞서 논설위원의 사례와 함께 이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쪽에선 법을 만들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권력기관 수장의 정치 직행을 제도로 금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적어도 이래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기 위해 선두에 서야 할 것은 언론이다. 그러나 현직 언론인이 캠프로, 청와대 대변인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직행하는 일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미 부끄러움은 없고, 누가 지적을 하면 남 탓만 한다.
보수언론은 진보적 논조의 언론을 ‘좌파언론’이라며 상대를 하지 않고, 진보적 논조의 언론은 밑도 끝도 없이 ‘조중동’ 타령만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과 정파적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시늉만 한다. 서로 죽일 듯 욕하는 것 같아도 멀리서 보면 거대한 구조 속 공생관계다. 사람들이 언론과 정치가 말하는 ‘개혁’을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참 검찰개혁에 집착하던 여당은 이번엔 언론개혁을 들고 나왔는데, 포털 문제가 핵심 같다. 미디어혁신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민 최고위원은 알고리즘 뉴스 추천 서비스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포털에 대한 요구가 공정한 편집에서 알고리즘 도입으로, 알고리즘에서 ‘뉴스완박’으로 이어지는 근거는 포털이 어떤 음모적 이유로 보수언론 중심의 뉴스를 과다 노출한다는 의심이다. 이런 요구는 ‘우리 편 기사’가 다수가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제대로 못하면 ‘우리 편 기사’의 숫자는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포털 중심 뉴스 공급 체계의 개혁은 필요하지만 그 핵심이 언론 정파성의 극복일 수는 없다는 거다.
언론의 정파성 극복은 직업윤리의 차원에서 언론과 언론 또 언론과 정치가 상호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각자의 ‘질’을 높여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언론인 출신이 현실 정치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이 있다면 정권의 ‘입’이 되거나 캠프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이런 차원에서 정치와 제도가 작동하도록 ‘개혁’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김의겸 의원 등의 사례를 볼 때, 지금도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