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46개국 중 38위. 최근 영국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발표한 한국 뉴스의 신뢰도 순위다. 신뢰도는 불과 44%. 지난 4년 내내 꼴찌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발전했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언론에 대한 불신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1인 미디어 수준의 인터넷 매체나 일부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 또 그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포털의 탓이라며 또 한 번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 역시 높지 않다. 번거로운 절차를 자청해 지난해 3만6000여 가구가 KBS로부터 수신료를 돌려받았다. 4년 전인 1만5000여 건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신뢰도 순위를 국내 15개 언론으로만 좁혀도 1, 2위는 공영방송 몫이 아니었다. 공영방송 뉴스 시청률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감한 것도 단순히 뉴스 소비 패턴 변화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갈수록 공영방송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징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독립성이다. 공영방송의 정파성에 대해선 많은 국민이 의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스를 하나하나 분석하지 않더라도 KBS와 MBC의 지배 구조 자체가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공영방송 모두 대통령과 여당, 야당이 일정 비율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는 이사를 추천하고 있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선임하게 되고, 정권에 의해 선임된 사장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주도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정치권의 추천 구조로 굳어지게 된 지난 2008년 이후 KBS 사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23.4개월로 지난 1987년 민주화 시기 이후의 평균 재임 기간인 56개월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BBC 사장 67.7개월, NHK 회장 45.3개월과 비교해도 크게 낮다. 8개월 이내 교체 사례를 근거로 정치적 취약성을 계산했을 때 한국 0.78, 영국 0, 일본 0.08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1에 가까울수록 정치적 독립성이 낮다는 뜻이다. 재임 기간이 독립성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정치적 개입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을 내걸었다. 이미 국회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률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처럼 무작위로 100인의 추천단을 구성하거나, 지역·여성·청년 등 각 분야의 대표를 공영방송 이사로 추천하는 방식 등이 제안됐다. 그것으로도 부족하거나 미심쩍다면 공청회 등을 통해 토론하고 보완점을 내놓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야당은 대놓고 파행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여당이 공수처 등 자신들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던 문제들은 강행 처리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여당의 의지 역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과 KBS·EBS 이사회 구성, KBS 사장 선임 일정이 8월부터 줄줄이 예정돼 있다. 시행령 개정 등의 시간을 고려하면 6월 임시국회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이후엔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서고 관련 논의는 불가능하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자산이다. 공영방송을 전리품 취급하며 당리당략과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다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공영방송 구성원들도 마냥 정치권만 바라보고 있어선 안 된다. 사장이 누가 되든 흔들리지 않을 내부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사장이, 보도 책임자가 누구로 임명되든 뉴스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편집권을 확실히 보장 받아야 한다. 보도국장 투표제나 임명동의제 같은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의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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