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기자들이 두려움 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 원칙을 지키면서 언론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론의 독립성은 권력과 자본뿐 아니라 편파적인 시각, 획일화를 강요하는 압력에서도 벗어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악플이 달릴 만한 것은 발제하지 않게 된다.” “기사 쓰기 전에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있는 것 같다.”
실명을 거론하며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로 가득한 메일과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달리는 인신공격성 댓글. 글씨로 가해진 위협이 실제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기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새로운 장벽이다. 디지털 시대, 시민과 소통하며 독자의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한 기사가 ‘좋은 기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사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언론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키우는 밑거름이다.
하지만 최근 기자 개인에게 쏟아지는 질책은 혐오에 기반을 둔 협박인 경우가 많다. 가치관이 다르거나 지지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이버 공격’이 이뤄지고 ‘테러’에 가까운 보복 댓글이 달린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2년 전 한겨레에 쓴 기고에서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가’에 따라 ‘참언론’이 결정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의 말에 따르면 독자들이 ‘해장국 언론’을 원하는 것은 “디지털 혁명의 산물”이다.
디지털 전환을 지상 과제로 외치는 언론사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분투하는 기자들의 취재 환경에 대해서는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기레기’라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일상에서 기자들은 혐오의 공격 대상이다. 조직은 이 같은 환경에서 기자들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 특정한 주제로 기사를 쓴다는 이유로, 특정한 정치인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에 노출된 기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실존한다. 이는 개인의 고충을 넘어 취재 활동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사실을 언론계가 인지해야 한다. 이런 현상 자체가 기자들을 검열하는 장치가 돼 기사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일보와 한겨레, KBS와 SBS 등은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 치료나 악플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법률 지원을 일찍이 제도로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자사 기자의 취재권을 보호하는 일은 당연하나, 여전히 ‘회사에서 이런 고충을 속 터놓고 이야기할 곳도 없다’는 기자들이 더 많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월 자사 기자가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표현이 담긴 메일로 공격을 받자 내셔널에디터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며 기자 보호에 나섰다. “기자는 할 일을 했을 뿐”이며 “그가 WP의 구성원인 것이 더 이상 자랑스러울 수 없다”고 밝혔다. 법적 대응과 트라우마 관리는 물론이고, WP의 성명과 같이 회사와 조직이 기자의 취재와 보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심리적인 지지도 필요하다.
‘기자라면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거나 ‘모든 악플에 대응할 수 없다’는 태도는 안일한 사고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댓글과 메일 공격은 기자 개인이 마음을 추스르면 극복할 수 있는 상처 수준이 아니다. 기사를 쓰고 취재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트라우마적인 경험이다. 기자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이런 현상이 ‘직업적 특성’으로 인식된다면 언론계에 새로운 인재의 유입을 막을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