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내로남불’과 방송통신위원회의 ‘방관’이 합작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가 방송의 독립성과 먼 길로 치닫고 있다. 방통위가 지난 4일 KBS 이사 지원자 40명과 MBC 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지원자 22명을 면접대상자로 의결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부적격자로 비판받는 인물이 1차 문턱을 통과하는 등 여야의 나눠먹기 관행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아무런 진전 없이 방치되면서 ‘국민 참여형’ 이사 선임 절차가 힘들어지며 예고된 일이었다. 이대로 진행되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논란이 되풀이될 것이 뻔하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왔던 KBS와 EBS, 방문진 이사 추천을 제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말만 해놓고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며 사태를 지금까지 끌고 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민주당 입장에선 KBS 이사 7(여당):4(야당), 방문진 이사 6(여당):3(야당)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쁠 게 없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 약속보다 눈앞의 떡을 놓지 않으려는 행태가 협잡꾼과 다를 바 없다.
방통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 참여와 투명성 확보를 강조해왔지만, 국민들은 지원자가 어떤 근거로 1차 관문을 통과해 면접을 보게 됐는지 알 수 없다. 특히 방문진 이사 지원자 22명이 한 명도 탈락 없이 면접을 보게 된 현실은 허술한 심사를 짐작케 한다. 5·18 역사왜곡과 세월호 유가족 폄훼를 한 인물이 버젓이 통과된 걸 보면 공영방송 이사의 적격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KBS 이사 후보도 지난 대선 때 여당 캠프에서 활동한 인물이 포함됐는데 공영방송 이사 자리가 전리품이라도 되는 것인가. 방통위가 ‘밀실 정치’를 해온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언론노조 EBS·MBC·KBS본부 등 공영방송 3사 노조는 이런 행태를 예견하고 ‘지배구조 개선’ 법 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 과정의 정치적 독립성을 명문화할 것,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 사회적 약자 등 시대적 가치를 구현할 능력을 이사 자격 요건으로 할 것을 촉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법 개정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부적격 이사 선임을 강행한다면 파국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사 추천 과정을 보면 우려가 크다. 파국을 막으려면 면접에서 부적격 인물을 걸러내야 한다. 정권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 방송장악 의도를 노골화하는 인물, 내부 종사자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 정치권 추천을 명시한 인물을 배제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방통위 설립목적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한다’고 적시돼있다. 이에 반한 인물이 이사가 돼선 안 될 근거로 충분하다.
이사 선임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 선임 개입을 멈춰야 한다. 친정권 인물을 이사에 앉혀 사장 선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이사·사장 선임에 개입한 결과가 어땠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결단이 필요하다. 방송의 독립은 정치적 득실을 떠나야 한다. 방통위는 정치권의 나눠먹기 추천권을 배제하고 이사 지원자 면접을 진행하기 바란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을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 그나마 ‘정쟁의 도구’라는 비판을 피하는 방법이다.
방송이 진실의 창이 아니라 정권의 방패일 때 국민들은 분노했다. 공영방송의 독립, 결코 타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