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라는 여의봉

[언론 다시보기]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언론중재위원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나는 정치권과 언론, 학계에서 ‘가짜뉴스’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실체는 다면적이고 모호함에도, 입에 착착 감기는 그 맛 때문에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도무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전염성과 선동성이 있다. ‘가짜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 설문조사를 한다면 결과가 찬성 100%에 가깝게 나온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조차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모호하지만 여의봉 같은 신통력을 발휘하는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왜 쓰면 안 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연합(EU)이나 영국은 ‘가짜뉴스’라는 단어 사용을 경계해 왔다. 2018년 유럽연합집행위(EC)로부터 허위정보 대처의 청사진을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고위전문가그룹(HLEG)은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권력자들이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뉴스를 부정하고 언론사를 공격하거나 폄훼하기 위해 무기처럼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부터 공식 문서에 ‘가짜뉴스’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에서 ‘가짜뉴스’라는 단어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입법 목적이 과연 ‘가짜’ 대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를 제어하려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개정안은 ‘허위·조작보도’를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한 행위’로 규정했다. 조작하지 않은 ‘허위의 사실’에는 언론의 오보도 포함될 수 있다. 2018년 허위정보(disinformation)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한 EU는 ‘허위정보’에 언론의 오보(reporting errors)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오보를 허위정보에 포함할 경우 일상적인 언론 활동에 족쇄가 채워진다.


신설 조항 중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추정되는 것에는 “정정보도청구 등이 있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가 포함된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앞으로 보도에 불만을 품은 당사자가 정정을 청구한 경우, 그 속보를 보도하려는 언론사들은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처벌될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1971년,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감춘 ‘펜타곤 문서’를 뉴욕타임스가 입수해 보도하자 법무부는 연방법원으로부터 국가 기밀문서의 공표를 금지하는 임시명령을 얻어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묶이자 후속보도를 이어간 곳은 워싱턴 포스트였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이러한 종류의 릴레이 보도는 움츠러들 것이다. 피해액의 5배까지 물어내야 하는 징벌적 배상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피해 구제’라는 명분에 입법자들 스스로 취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가 힘겹게 확장해 온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는 것이 진정한 입법 목적이라면, ‘가짜뉴스’를 구실로 삼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법안 개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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