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이나 보험을 깨는 것도 모자라 1000만원대의 빚을 지는 이들이 있었다. 1990년대 ‘시경캡’들이다. 1997년 7월19일자 기자협회보는 1면 머리기사로 시경캡들의 재정난을 조명했다. 당시 10명 안팎에서 많게는 40명에 가까운 기자들을 거느렸던 시경캡은 후배들의 밥값과 술값을 대느라 엄청난 재정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회사에서 취재비와 판공비 명목으로 100~300만원 정도의 돈이 나왔지만 최소한의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시경캡을 역임했던 방송사의 한 10년차 기자는 “월급의 대부분을 썼다”고 했고, 다른 시경캡도 “방송사로 이직한 이후 캡을 맡으면서 신문사에서 받은 퇴직금을 고스란히 날렸다”고 증언했다.
서울시 경찰청 내의 외환은행 출장소는 당시 시경캡들의 또 다른 출입처이기도 했다. “근무하는 동안 내가 아는 사람만 5명이 10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았다” “타사 캡과 서로 보증을 서주고 1000만원씩 대출을 받았다”는 기자들의 이야기가 기사에 담겼다. 사별로 드러나지 않는 경쟁심리와 예전보다 못한 선배들의 지원도 시경캡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경찰기자들의 취재시스템과 시경캡의 처우개선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주장도 당시 제기됐다. ‘기자들을 묶어두는 회의문화를 고쳐 전화나 컴퓨터를 통해 보고하고 현장에서 출·퇴근하는 체제가 정착돼야 한다’ ‘대화나 토론을 포기하고 1차, 2차 등을 거치는 음주문화를 재고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었다. 다만 교육과 팀워크 형성에 장애가 된다는 반론 역시 만만찮았다.
지금은 어떨까. 5~6년 전만 해도 지속되던 시경캡들의 재정난은 근래 들어선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에 더해 술자리 문화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한 시경캡은 “제가 바이스를 하던 때만 해도 시경캡들이 2000~3000만원씩 돈을 썼는데 올해만 하더라도 돈을 쓸 일이 거의 없다”며 “코로나19로 집합 자체가 어렵고 대관접촉도 최소화되는 데다 예전처럼 술을 먹는 문화도 아니라서 그렇다. 술자리를 강권하지도 않고 술을 마신다 해도 예전처럼 먹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