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언론 시계는 거꾸로 간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조차도 그것이 토론되는 과정에서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었던 2014년,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토론회에 나와 마이크에 대고 밝힌 공개 입장이다.


2021년 8월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확실시된다.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이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국내 일부 매체에 영어 표현인 “None of my business”라는 답을 내놨다고 한다.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얘기다.


그사이, 이 개정안에 대한 국제 사회의 규탄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찾아갔던 SFCC는 지난 20일 이사회 전체 명의로 성명을 냈다. 그대로 옮긴다.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 법안이 국회에서 전광석화로 처리되기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한국 속담처럼 심사숙고하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돌다리는 이미 물 건너간 분위기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난 19일 국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를 통과했고, 여권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 본회의 통과가 목전이다. SFCC만이 아니다. 국제기자연맹(IFJ)과 국제언론인협회(IPI)·세계신문협회(WAN-IFRA) 등 다수의 국제 언론 관련 단체들의 성명이 잇따라 날아들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의 폐지를 요구한다”(IFJ) “비판적 보도를 위협하는 이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IPI)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WAN-IFRA) 등이다. IFJ는 약 140개국 60만여명의 기자들이 소속돼있는 단체다. IPI는 ‘언론인들의 유엔’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89개국의 언론사 간부급이 소속돼있다. WAN-IFRA는 뉴욕타임스(NYT) 등을 포함한 1만7000여개의 신문·통신사가 회원이다.


국내 상주 외신 기자들 역시 뒤숭숭하다. 절제된 표현으로 걸러진 SFCC 성명서에서 그 일단이 읽힌다. SFCC는 성명에서 “외신기자들 중에서는 언론중재법 외에 한국의 명예훼손죄 규정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느끼는 기자들도 있다”며 “전 세계 주요국 중 유례가 드물게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죄가 민사적 책임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이 가능한 데다,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때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중재안이 이중 삼중의 재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권 일각에서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놓고 “미국에선 이미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 논리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언론에 국한한 것이 아니다. 기업이 고의성을 띠고 이익을 위해 불법을 자행할 경우 죄질이 나쁘다는 점을 고려해 실제 발생한 피해보다 더 큰 금액을 벌칙성으로 부과하는 조치이며, 미국 내에서도 대형 로펌이 이를 오남용한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다시 문 대통령으로 돌아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며 언론 자유는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다.” 대통령의 이 발언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언이라는 논란이 일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헌법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바란다. 대통령과 여권이 헌법 정신을 수호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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