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언론중재법, 폐기가 답이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여야가 언론중재법 단일안 마련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며 국회 본회의 통과를 미루며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행스럽지만 수차례 수정을 거치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누더기가 됐다. 애초 언론자유를 침해할 조항을 넣을 때부터 예고된 결과였다. 가짜뉴스 피해구제라는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보도의 정의조차 명확히 내리지 못한 조악한 것이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8인 협의체를 만들어 11번의 회의를 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한 달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인권위까지 나서 “법안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국제적으로 언론자유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법제화를 반대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충분한 검토를 당부했다.


비판에 직면한 민주당이 안팎의 우려를 듣고 수정안을 냈지만, 바뀐 내용을 보면 애초 언론중재법을 왜 개정하려고 했는지조차 의문이다. 수정안이 여론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사실은 법안 자체가 가진 부실함을 실토한 것과 다름없다. 고의중과실 조항과 허위·조작보도의 정의를 삭제하고, 징벌적 손배 청구액과 열람차단청구권 내용을 조정한 것만 봐도 그렇다.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을 최대한 차단해 명확하게 법안을 만드는 것이 기본일 텐데 기초 작업이 허술해 결국 누더기가 돼버렸다. 헌법의 기본권인 언론자유를 옥죌 법안을 만들며 법률적 타당성 검토를 하긴 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개정안을 폐기하는 게 맞다. 헌법재판소는 과거에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엔 보다 엄격한 비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 명백한 위험성의 원칙 등의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민주당이 법안 처리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다수당이라는 힘의 우위로 얼마든지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일 수 있다. 그 후 상황은 쉽게 예견된다. 언론단체는 이미 위헌심판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언론중재법이 언론자유를 훼손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해 온 국제기구들도 연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은 언론에 대한 자율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통합형 언론 자율규제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현업 언론단체와 사용자 단체,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등을 포괄하는 실효적 자율규제 체제를 만들어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자정 노력을 소홀히 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데 대한 뼈아픈 성찰이 담겨 있다. 개혁의 바람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 처리를 미루며 언론중재법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언론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징벌적 손배 상한을 정하지 않는 대신 가짜뉴스에 대한 가중처벌을 하는 제3의 방안이 나왔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어떤 최종안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언론계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항은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징벌적 손배는 언론의 자유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게 헌법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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