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무단협 사태가 3주째에 접어들고 있다. 언론사의 ‘무단협’ 사태는 방송사는 물론 언론계 전체에서도 흔하지 않은 사례다. 무단협 사태가 해소되지 않으면 단협이 보장하고 있는 전임자 타임오프, 조합비 자동공제 등이 사라져 노조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알려진 대로 이번 사태의 쟁점은 경영진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기로 한 2017년 10월 노사합의다. 사장을 포함해 보도, 편성, 시사교양 최고 책임자를 임명할 때 재적인원 6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을 철회하는, 파격적인 합의였다. 하지만 현재 노사 입장은 평행선이다. 노조는 경영진 임명동의제는 공정방송과 무관한 인물이 대주주 지명으로 사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측은 2019년 노조가 배임혐의 등으로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주주에게 이사 임면권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는 2017년 합의안을 위반했으므로 합의가 무효화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회사 측이 단협 해지를 통고한 이후 노사 양측은 교섭을 가졌지만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사장을 임명동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중간평가를 실시하는 중재안을 제안했지만 회사 측은 임명동의제를 먼저 폐기하고 공정방송제도 마련을 위한 TF를 구성하자는 입장이다. 회사 측이 선(先) 임명동의제 폐지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협상 전망도 밝지 않다.
노사 간 입장차를 좁히기 힘든 상황일수록 해법의 단초를 2017년 임명동의제 도입이 결정된 배경을 되짚어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 당시 SBS에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경영진이 부당하게 보도·편성에 간여했다는 의혹으로 시끄러웠다.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다루면서 검증되지 않은 ‘논두렁 시계’ 보도로 파문을 일으켰고 박근혜 정부 때는 경영진이 정권에 비판적인 연예인 출연을 배제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윤세영 당시 회장은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지속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우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다가 퇴진했던 상황이었다. 공정보도의 전제조건인 보도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경영진에 대한 불신감이 SBS 구성원 사이에 폭넓게 형성돼있지 않았다면 이처럼 전향적인 합의는 나올 수 없었다. 여러 언론사에서 시행 중인 편집·보도국장 임명동의제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제대로만 정착된다면 언론 내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는 합의였다. 전세계 어디에도 경영진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없어 이를 폐기할 수밖에 없다는 회사 측의 주장이 군색한 이유다.
편집권이 사주나 경영진에 속하느냐 기자들에게 속하느냐는 오랜 논쟁거리이지만 정치·자본권력과 유착된 경영진의 언론훼손 행태가 빈발했던 한국언론에서 누구에게 편집권이 귀속되느냐는 더 이상 논쟁이 아니다. 법원 역시 일반기업과 달리 방송사 등 언론매체의 경우 방송의 객관성·공정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으며 이 의무는 기초적인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정보도를 담보할 실효성 있는 방안인 경영진 임명동의제 폐지를 고수하고 있는 SBS의 태도는 그런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이번 사태가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해 노사 갈등을 만들고 노조의 힘을 빼려던 MB 정부 때 기업들의 노조파괴 행태를 연상시킨는 비판도 나온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사에서 설마 ‘노조파괴’를 의도했으리라고 믿고 싶지 않다. 무단협 사태를 해소하기 위한 앞으로 협상에서 회사 측의 전향적 태도 전환을 바란다. 공정방송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대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