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됐다. 상상만 해왔던 ‘위드 코로나’ 시대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시작된 뒤 언론사에 입사한 기자들은 물론,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건너는 동안 일어난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뉴노멀’로 받아들인 기자들에게 ‘되돌아간다’는 감각은 없다.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야만 했던 지난 2년 가까이는 언론계의 근무 환경부터 의제 설정, 게이트 키핑의 기준까지 바꿔놓은 시간이었다.
실제로 앞으로의 취재 환경은 이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취재원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인맥을 쌓으며 기사를 쓰는 일이 강제적으로 중단된 사이, 새로운 소통법과 달라진 관계망이 형성됐다. 방역을 위해 닫혔던 기자실은 다시 열릴지도 미지수다. 일부 출입처는 기자들이 차지한 공간의 효용성을 비용과 효과로 저울질한다. 기업의 사옥을 메타버스 안으로 이전해 현실의 출입처가 사라진 곳도 있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막혀버린 상황을 보완하려고 만든 정부부처의 백 브리핑마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만날 수 없는 취재원보다 공식 입장이 정리된 ‘오피셜’을 기다리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비대면 화상 회의가 모든 인터뷰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일시적 대안이 아닌 ‘대면’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취재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현장은 바뀌었는데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취재 지시는 ‘원상 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끝났을지 몰라도 언론과 언론의 취재에 대한 심리적 거리두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조사도 없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근자감’만 앞선 듯 보인다. 본격화된 대선 국면에서 변화된 취재 환경이나 시대정신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변화된 사회적 가치와 합의를 어떤 관점으로 다룰지도 논의가 필요하지만 공론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정치, 경제, 기술 등 사회 전방위로 잠재했던 변화의 인자들이 ‘코로나19’를 만나 가시화됐고, 또 가속화됐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욕망들이 분출되며 양극화가 강화됐다. 언론은 공동체의 벌어진 틈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누구의 목소리를 담아, 어디를 향해 외칠 것인지 재정의가 필요한 의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불러온 불확실성이 커지던 때, 시민들은 가장 신뢰할 만한 곳으로 언론을 꼽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해 6개국, 올해 8개국 시민들에게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물었는데 두 차례 조사에서 모두 ‘언론사 뉴스’라고 답한 비율은 한국이 가장 높았다. 개혁 요구가 높아진 언론 불신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독자들이 보여준 신뢰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지난해 9월, 우리의 주장을 통해 코로나 위기를 언론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후대의 과제로 남겨뒀던 취재 관행, 대안이 없다는 명목으로 유지했던 재래식 업무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라고 말이다. 강요됐거나 포기했던 가치들도 되찾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얼마나 완료했는가. ‘위드 코로나’는 또 한 번 우리 앞에 놓인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이다.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 시대에 적응해 진화할 것인가. 선택에 따라 언론과 언론인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