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신상털이가 공수처에서 할 일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수사기관의 편의가 인권보다 앞설 수 없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소신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헌법 원칙에 따른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공수처의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일은 이런 원칙과 정면 배치된다.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요청한 언론사 기자는 13개사 41명으로 확인된다. 공수처와 무관한 야당 출입 기자와 정부에 비판적인 회계사의 개인정보까지 수집한 것으로 드러나 ‘과잉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TV조선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에 태워 ‘황제 조사’했다며 그 장면이 담긴 CCTV를 입수해 보도한 이후 기자들 통신자료를 수집해 ‘뒷조사’ 의혹에 ‘보복 수사’ 논란까지 번졌다. 공수처가 “주요 피의자의 통화내역 자료를 적법하게 확보해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해명했지만,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수사 편의를 위해 해왔던 행태를 그대로 빼닮았다.


수사기관이 개인의 통신자료를 멋대로 수집할 수 있는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사를 위해 통신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문구 자체만으로는 강제조항이 아니지만, 수사기관의 자료 요청을 통신사가 거부한 적이 없다. 사실상 의무조항처럼 운영해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2014년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가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관련 규정을 삭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민주당도 야당 때인 2016년 ‘영장을 받아야 통신자료를 조회하도록 하고, 사후에 당사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범죄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벽에 부닥쳐 번번이 무산됐다. 대법원도 “수사기관이 자료 제공을 요청한 사유와 정보의 범위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해 개인의 헌법적 권리가 침해된 현실에 눈감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사 편의에 밀려 인권이 희생되고 있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지적이었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의 기자 통신자료 조회가 언론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큰 것은 제보자나 공익신고자가 기자와 접촉했는지 수사기관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감시를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상시화한다는 데 심각성이 크다. 지난 2016년에도 국정원이 한겨레신문 기자와 민주노총 실무자, 야당 당직자, 세월호 가족 등 수십 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사찰 논란이 일었다. 당시 국정원이 밝힌 내용은 이번 공수처의 해명과 비슷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내사 과정에서 피내사자와 연락한 전화번호가 나와 확인한 것이다.”


작년에 통신사업자가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자료 건수는 무려 548만4917건이었다. 저인망식으로 개인정보를 무작위로 수집하고 있는데, 통제 장치가 전무한 현실은 충격적이다. 불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왔지만 무산된 관련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원칙적으로 법원 영장을 받아야만 통신자료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고, 사후에 반드시 당사자에게 열람 사실을 통보하는 절차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로막는 수사관행, 이제는 폐지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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