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이 대주주 호반그룹에 대한 과거 비판적 기사를 일괄 삭제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설자본이 언론사를 인수할 때 예견됐던 사주에 의한 편집권 침해가 노골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영권과 편집권의 분리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몰각한 사주의 태도, 기사삭제의 책임을 회피하는듯한 경영진의 행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신문 온라인에서 삭제된 기사는 2019년 7월부터 11월까지 특별취재팀 바이라인을 달고 연속보도한 ‘언론사유화 시도 호반건설그룹 대해부’ 시리즈 기사 50여건이다. 당시는 호반건설이 포스코 지분을 인수하는 등 서울신문 인수전에 뛰어들던 시기로 이 기사들은 호반그룹의 편법승계 및 부당내부거래 의혹 등을 파헤쳤다. 보도가 나간 뒤 금융당국이 호반그룹 의혹에 대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상장기업에 대한 경영감시라는 공익적 가치에 부합하는 기사였다는 방증이다.
기사 한 건이 출고되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첨삭을 놓고서도 데스크와 취재기자 간에 치열한 논쟁과 설득, 타협 과정이 이뤄진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기사는 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건도 아닌 50여 건의 비판 기사가 통째로 사라졌다. 심지어 홈페이지에는 기사 삭제와 관련한 어떠한 해명도 없다. 취재기자들이 현장에서 흘린 땀을 도로(徒勞)로 만들어버리는 행태임은 물론이고 서울신문 스스로 기사 신뢰도를 깎아버린 자해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일언반구 없이 자신들의 대표상품을 시장에서 회수해가는 기업을 어떤 소비자들이 신뢰할 것인가.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는 기사, 함량이 미달되는 기사라 판단된다면 추후에라도 수정·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극단적인 경우 삭제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 전제는 취재기자와 독자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다. 기사 삭제 후 이어졌던 서울신문 저연차 기자들의 비판성명은 그런 과정이 생략되거나 형식적이었다는 증거다. “군홧발이 편집국을 짓밟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는 언론단체들의 지적은 다소 과장됐다고 해도 전례 없이 수십 편의 기사를 일괄 삭제하면서 보여준 경영진, 편집국 간부들의 태도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 협의 과정의 결정사항이 회사의 결정으로 집행된 것으로 편집권 부분이 아니다”라는 황수정 편집국장의 말은 기사에 대한 사내 외 압력에 맞서야 할 편집국 수장의 변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책임하다. “호반이 최대주주인 회사에서 호반에 대해 악의적으로 쓴 기사도 많이 있는데, 서울신문에 남아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는 곽태헌 사장의 발언은 스스로 악의를 가지고 취재와 보도를 했다는 점을 자인하는 것인가. 신문사 사장이 신문을 ‘사보’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지나치지 않다.
대주주인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의 언론관은 더 납득할 수가 없다. 그는 사내 게시판에 “기사의 사실관계에 대해 대화의 시간을 갖겠다. 그 기사의 진실성이 밝혀진다면 회장 직권으로 다시 게재하겠다”고 했다. 언제부터 기사 게재와 삭제가 사주의 ‘직권’에 좌지우지됐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종합일간지를 운영하는 언론사 사주가 편집권 독립이라는 저널리즘의 ABC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참담하다. 호반이 중앙언론사 인수작업 착수 당시 언론계에서는 호반이 kbc광주방송을 운영했을 때의 전례를 거론하며 언론사를 ‘사업 방패막이’로나 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기사삭제 사태에 대한 그의 인식을 확인하고 나니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호반은 이러려고 서울신문을 인수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