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도핑 논란에 휩싸인 러시아의 피겨 천재 카밀라 발리예바가 올림픽 기간 내내 화제였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비난 여론과 그로 인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요. 발리예바는 쇼트에서 착지 실수를 한 데 이어 프리에서는 3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 맙니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합니다. 점수를 기다리는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옆에 있는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가 뭐라고 말하자 발리예바는 결국 고개를 숙여 흐느끼고 맙니다. 코치가 한 말은 “왜 포기했어? 나한테 설명해봐”였다고 하네요.
발리예바가 결국 4위에 그쳤지만 러시아는 금메달, 은메달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도 메달리스트들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습니다. 금메달인 안나 셰르바코바는 어안이 벙벙, 은메달인 알렉산드라 트루소바는 자기만 금메달을 못 받았다며 화를 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영화 ‘블랙 위도우’의 나타샤 로마노프가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자라난 ‘레드룸’이 생각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10대입니다. 발리예바는 만 15세에 불과하구요. 피겨 천재를 양성하기 위해 주변의 어른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그 사람들에게 논란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 소녀들이 더 이상 메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