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에 대한 부채 의식, 반성의 의미 담은 보도"

[시선집중 이 사람] 강원일보에 한국기자상 안긴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취재팀

지난달 24일 열린 제53회 한국기자상 시상식. 수상작 6편 가운데 지역언론사는 강원일보가 유일했다. 강원도 언론사로선 11년 만에, 강원일보에선 21년 만에 나온 한국기자상이다. 지역기획보도부문에 선정된 <감춰진 진실-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은 ‘이 문제를 새로운 의제로 부각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날 취재팀 대표로 수상소감을 밝힌 최기영 강원일보 기자는 “부채 의식이 이번 보도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감춰진 진실-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보도로 제53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강원일보 최기영·이현정·김수빈 기자.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문제지만, 지금껏 수면 아래 있었다. 이 사건은 1950~1980년대 남한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부들이 북으로 납치됐다가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사실을 통칭한다. 이들은 수십년이 지나도록 얼굴을 숨긴 채 고통 속에 살아왔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기영 기자, 이현정 기자, 김수빈 기자에게도 낯선 역사였다.


“저희 셋 고향이 동해, 속초, 양양이에요. 납북귀환 피해 당사자분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거든요. 부끄럽지만 잘 몰랐어요. 2020년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을 역점적으로 다루려 한다는 이야길 듣고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큰일인 줄 예상하지 못했고요. 우리 지역의 일인데도 크게 보도하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 반성의 의미를 담고싶었습니다.”(최기영)


강원일보 취재팀은 정부의 공식기록부터 확보했다. 전국에서 납북어민 3648명이 간첩조작사건에 휘말렸고, 이들 가운데 1527명이 강원도 동해안에서 납북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들도 직접 만났다. 납북됐다 돌아온 후 우리정부가 가한 폭행과 고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온 이들의 상처가 강원일보에 고스란히 담겼다.


보도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강원도의회는 지난달 17일 ‘납북귀환어부 명예회복 지원 조례안’을 의결했다. 같은달 24일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 982명을 대상으로, 당사자의 이의 제기가 없더라도 국가가 자진해 조사하는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얼굴과 이름을 숨기며 살아온 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강원일보 보도 덕분에,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피해자·시민모임도 처음 결성됐다.


세 기자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긴 납북귀환어부 보도는 기자라는 직업과 지역언론의 역할을 되새기게 했다. 최기영 기자는 “이제 기사는 AI가 쓰고 앞으로 기자는 대체될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하면서 결국 사람 이야기는 사람이 취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입사 15년 만에 다시 체감했다”며 “지역민들과 더 깊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것도 지역언론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4년차인 김수빈 기자는 “가족들과 고향 이웃들이 다 저희 신문을 본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보도하는지도 주의 깊게 보기 때문에 저로선 더 충실한 기사를 쓰려 한다”며 “짧게 스쳐지나가는 것보다는 이분들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저희가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가 이번 보도에 어우러졌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보도 이후, 한 배에 탔던 선원들이 50년 만에 모두 모이는 자리에 초대받았던 이현정 기자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기자는 “지금까지도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거나 또 봉변 당할까 두렵다는 분들이 있었다”며 “그럴수록 저희가 더 다가가야 한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친밀감을 쌓아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게 지역언론의 일인 것 같다”고 했다.


납북귀환어부 취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올해는 강원도를 넘어 전국적인 이슈로 키우고픈 바람이다. “강원도뿐 아니라 인천, 강화도쪽 서해안에서 납북됐던 분들도 많아요. 그분들의 목소리도 담아보려고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획취재지원사업에 신청했는데, 꼭 선정돼서 지역신문의 한계를 넘고 싶습니다.”(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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