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데자뷔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지종익 KBS 도쿄특파원

지종익 KBS 도쿄특파원

3·11 동일본대지진 11년을 맞아 또 다시 후쿠시마를 찾았다. 지난해 11월, 일본 외무성이 후쿠시마 원전 내부를 외신에 공개한 데 이어 두 번째 후쿠시마 현지 취재였다. 그 사이 후쿠시마는 달라진 게 없었다.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방사능 오염 물질 포대들, ‘귀환곤란구역’임을 알리는 노란색 경고문과 통행을 막는 바리케이드. 머릿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풍경들과 지금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이 혼재돼 데자뷔처럼 흘러 다닌다. 사고 후 10년 넘게 이어져 왔던 비슷한 풍경이 넉 달 만에 달라질 리 없는 게 당연하다. 이런 뻔한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3·11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런 당위와 의무도 있었고, 현장에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뉴스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렇게 믿었던 건 몇 달 전부터 일본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준비 숙박’이라는 낯선 이름의 제도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로 인해 피난을 떠나 있는 원주민들을 위한 제도로, 말 그대로 ‘귀환 준비를 위해 숙박을 허락한다’는 내용이다. 아직 피난 지시가 해제되지 않은 ‘귀환곤란구역’이라고 하더라도 주민들은 과거에 살던 집에서 체류하며 후쿠시마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준비할 수 있다. 일본 정부나 자치단체는 방사능 수치가 떨어졌고, ‘피난지시 해제’라는 행정 절차만 남아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살 수 있는 집이 그대로 남아있고, 다시 돌아갈 ‘귀환 의향’이 있는 원주민이 신청 대상이다.


일본 언론을 통해 접했던 내용 중 뇌리에 남았던 건 준비 숙박을 신청한 이들의 소식이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정든 옛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다시 행복한 나날을 그려보는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이라는 재앙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와 후쿠시마에서 희망을 싹틔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취재진에게 귀환곤란구역의 문을 열어준 원주민은 방사능은 이제 무섭지 않다며 희망을 얘기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망이 후쿠시마의 현재를 관통하고 있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일본 언론이 간추려서 전달한 모습과 보이는 풍경은 달랐다. 제도로서의 ‘준비숙박’은 시작했지만 하나의 장치에 불과해 보였다. 재생과 부흥의 본격화를 외치기 직전에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예고일 수도 있다. 방사능 수치가 내려갔다고는 해도 그런 곳은 아직 일부였다. 의구심과 두려움을 삼키고 이곳에서 ‘다시 살겠다’고 마음 먹기에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체들이 아직 명확했다.


공포심은 수치로 증명된다. 준비숙박을 신청한 원주민은 가쓰라오무라의 대상자 30세대 83명 중 2세대 4명이었다. 대상자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집은 거의 헐렸다. 남아있는 집은 네 채뿐이라고 했다. 돌아올 마음은 진작부터 없었던 것이다. 3·11 당시 1567명이 살고 있었지만 현재 귀환 주민은 300명을 겨우 넘겼다. 그마저도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가쓰라오무라의 ‘부흥 추진’ 책임 공무원은 30년 후에는 지역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흥거점 중에서도 특히 후타바마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역을 새단장했지만 왕래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은 아직 없어도 역 주변의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역 주변에서는 임시 행정 청사와 산업단지 등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행정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해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인근의 숙소에서 만났던 공사장 노동자들과 외벽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 타지에서 찾아온 예술가 일행을 반복해서 마주쳤을 뿐이다. 빈집들 사이로 방호복 차림으로 제염 작업을 하고 있는 작업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역시 새로운 뉴스는 없었다. 후쿠시마의 재생과 부흥은 여전히 쉽지 않고, 일본 정부가 강행할 오염수 방류는 또 다른 재앙이 될 거라는 지역의 근심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번 취재도 과거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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