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원·김혜윤 한겨레 기자가 도착한 폴란드의 작은 도시 프셰미실은 고요한 분위기였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엔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연대를 위한 나눔과 실천이 이미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곳. 취재를 하던 두 기자가 ‘방 나눔’에 동참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레 바르샤바 출장을 가게 되면서 미리 예약한 방을 비울 수밖에 없었던 두 기자는 지난 10일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방 나눔을 알리는 종이 팻말을 들었다.
두 기자의 방 나눔 동참을 알린 <“‘한겨레’ 취재진도 방을 나눕니다” 우크라 난민이 다가왔다> 보도는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노지원 기자는 “처음엔 기자들의 모습을 기사로 보도하는 게 맞나 고민도 들어서 발제는 따로 안 하고 있었다. 데스크가 해당 영상을 보게 됐고, 격려를 받아 기사화까지 된 것”이라며 “독자들 중 한 명쯤은 기자들의 연대를 보고 ‘나도 한번 보탬이 돼볼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기사를 쓰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5일부터 18일까지 약 2주 동안 두 기자가 폴란드 현지에 머물며 연재한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가다> 기획에는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모습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담겨있다.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크라우프로 가는 열차 안에서 만난 키이우에서 온 두 아이의 엄마 안나, 러시아의 포격에 초토화된 하르키우에서 딸을 데리고 피난 온 줄리아는 특히나 기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다.
기존 보도와의 차별화는 두 기자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두 기자가 처음 폴란드에 도착할 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열흘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지난 1일 회사의 제안을 받고 4일 만에 부랴부랴 준비해 현지에 급파됐지만, 이미 많은 외신과 국내 언론사들이 폴란드 현지에서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현지에서 발굴한 난민 아이들을 학생으로 받아들인 폴란드 초·중등학교 탐방, 폴란드 국방차관 인터뷰 등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드르륵’하는 촬영 소리가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는 우려에 취재진이 몰렸던 난민 쉼터는 하루 사이에 취재 통제 구역이 되기도 했다. 난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야 했던 김혜윤 기자에겐 특히나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상황이었다. 현장에선 전쟁의 참상을 겪은 난민들의 상황을 어디까지 담아야 할지 고민도 마주했다.
“첫날엔 ‘노 카메라’라고 제한을 하도 받다 보니 위축된 것도 있었어요. 사진 한 장이라도 건지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태그를 보고 그나마 취재진이 덜 몰렸던 쉼터를 찾아가기도 했죠. 난민 열차에서 좋은 장면이 정말 많았는데 못 찍은 것도 있어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 상황이면 찍히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김혜윤 기자)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 취재에 나선 노지원 기자에게도, 입사 이후 첫 해외 출장인 김혜윤 기자에게도 이번 취재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됐다. “접경지역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역사의 한 부분을 취재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었지만, 난민들의 심정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해 여러 감정이 혼재했던 것 같아요. 최근 방송사들이 우크라이나 현지에 들어가서 취재를 하던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취재하는데 한발 벗어나 취재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아주 큰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노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