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자연환경에 대한 수업에 앞서 학교 선생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 수박을 쥐가 갉아 먹은 것처럼 남극의 하늘 위에 붉게 구멍이 뚫려 있는 사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쓰는 냉장고 속의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하게 되면 태양 빛이 그대로 사람에 닿게 되어 피부암 같은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집에 가는 길에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그늘로만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하필 그해 심각한 폭염과 가뭄으로 길바닥이 펄펄 끓는듯했기에 나는 공포감에 휩싸인 채 오래된 고물 냉장고를 당장 버려야 한다며 어머니 앞에서 떼를 쓰고 말았다.
비슷한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물 부족 국가 지정과 관련된 뉴스를 시청한 일이었다.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서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물이나 생활용수가 부족해지고, 앞으로는 비싼 돈을 내고 물을 사서 써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머릿속은 누런 사막과 모래 먼지의 아포칼립스였다. 이후 내가 얼마나 물을 아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다들 한 번쯤은 해보았을 양변기에 벽돌 넣기나 생활용수 모아서 재활용하기 등 여러 가지 물 절약 방법을 실천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목욕탕에서도 물을 틀어 놓지 않고 조금씩 받아 쓰게 되었다.
사실 미디어가 다룬 이 두 가지 환경 문제에는 오류가 있다. 프레온 가스로 인해 남극 하늘의 오존층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표현한 사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색을 입혀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게 만든 사진이었고,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은 어느 사설 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한 것으로 물 ‘스트레스’ 국가라는 표현이 와전된 것이었다. 언뜻 조작되었거나 왜곡된 정보에 의해 생겨난 촌극으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두 사건은 프레온 가스감축 및 새로운 냉매 개발, 수자원 관리 및 절수 설비 확대와 같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낸 계기로 인정받을만 하다.
실제로 오존층 파괴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던 염화불화탄소의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 합의에 큰 역할을 했다. 언론의 기능이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류가 불러온 변화가 어느 한 개인 나아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실을 알리는 것만이 언론 기능의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환경, 보건, 안전, 인권과 같은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인 의제 발굴(Agenda building)이 필요한 까닭이다.
최근 꿀벌이 사라졌다는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느 한 보도에 따르면 양봉협회 추산 59억 마리의 꿀벌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전대미문의 꿀벌 대량 실종 사태에 대해 천적 발생이나 전염병, 애벌레 기생충, 이상기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다만 꿀벌이 사라진 까닭은 과학자나 생물학자가 밝혀내야 하는 몫일 것이고, 언론사는 그 이면에 있는 기후와 환경 변화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데 더욱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기후와 환경 변화 문제의 경우 좀 더 장기적인 고민과 변화가 필요한 만큼, 의제를 발굴하고 알리기 위한 언론인들의 더 적극적인 전략과 실행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