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의 언론사 인수, 저널리즘 포기는 안 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중견기업들의 언론사 인수 움직임이 활발하다. 기존 언론의 영향력 저하가 뚜렷한 상황에서 투자 의지를 가진 기업의 언론사 인수 시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포털의 조회수에 연연하는 콘텐츠 양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언론사에게 기업의 안정적 투자는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북돋우는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라는 게 그 기대다. 반면 언론의 공적 책무는 외면한 채 기업이 사업을 위한 방패막이로 언론을 악용할지 모른다는 우려 목소리도 크다. 안타깝게도 최근 잇따른 중견기업들의 언론사 인수 움직임을 우리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언론의 위상은 기업의 선의에 의해 구축될 수 없다는 경험 때문이다.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매체들은 중앙경제지, 스포츠·연예전문지, 주간 경제지 등을 망라한다. 몇 년 사이 IT 전문지 전자신문, 온라인 경제매체 EBN, 종합일간지 서울신문을 잇따라 인수한 호반건설이 적극적으로 추가 매물을 찾고 있다는 후문이다. 인수를 추진 중인 매체의 구체적인 제호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호반건설의 문어발식 언론사 인수 시도는 결코 곱게 비치지 않는다. 서울신문이 호반건설에 인수된 뒤 대주주를 비판한 기사가 통째로 삭제되고 대주주의 불법 의혹 기사가 누락되는 등 심각한 편집권 침해 사태 때문이다. 건설회사가 인수한 지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이 때문에 서울신문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뢰를 크게 잃었다.


대표적인 치킨 프랜차이즈인 BHC의 언론사 인수 시도도 논란이다. BHC는 이달 중순 중앙그룹 자회사인 중앙일보S 소속의 일간스포츠와 주간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광고계에서는 이 회사가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마케팅 비용을 쓰는 대신 스포츠와 연예에 특화된 매체를 직접 소유함으로써 새로운 사업·광고 모델을 만들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스포츠·연예전문 매체라 해도 공익성이 강한 언론사를 수익성만 앞세우는 프랜차이즈 회사가 인수하는 일을 납득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BHC는 자사를 비판했던 한겨레신문, MBC 등에 대해 수억 원대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전력이 있다. 이 회사의 언론사 인수 시도를 순수한 사업 다각화 목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리스크 관리나 자사에 우호적 여론을 만들기 위해 언론사를 인수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BHC는 정직한 해답을 줘야 한다. 인수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고용승계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일간스포츠와 이코노미스트 임직원들은 매각소식이 알려지자 통합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중앙그룹 측에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혼란의 일차적 책임은 중앙그룹에 있지만 문제 해소의 궁극적 해법은 BHC가 구성원들에게 언론사로서 어떤 비전을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72년간 운영해 온 대구경북 지역의 최대 일간지 매일신문이 지난 17일 지역의 운송업체인 코리아와이드에 전격 매각된 일도 급작스럽다. 특정한 정치 성향을 강요하는 교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계기가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뉴스, 콘텐츠와는 일절 무관한 사업을 해온 새로운 대주주가 편집권 독립과 공익성이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을 제대로 보호해줄지는 미지수다.


언론사 인수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라면 언론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고 했던 언론인 백상 장기영의 언론 철학을 되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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