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의 '푸틴의 오판' 폭로, 왜?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최근 미 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허위 정보를 보고받고 있다는 정보당국의 첩보 내용을 잇따라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에게 오도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이는 군 지도부와의 지속적 긴장을 초래한다는 정보가 있다”며 “참모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 러시아군의 전쟁 성과와 제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게 독재국가의 아킬레스 건 중 하나”라며 푸틴의 정보라인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고,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 또한 이같은 결론에 동의했다. 앞서, AP등 미 언론들도 익명의 당국자의 말을 빌어, “푸틴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징집병을 동원한 사실조차 몰랐다”고 보도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보고받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푸틴 대통령이 불완전한 정보를 보고했다는 이유로 고위 당국자 일부를 가택연금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미 정부의 이번 정보공개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기관이 취합한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면서 누가 해당 정보에 대한 기밀 해제를 지시했는지, 해당 정보에 대한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조차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미 정부가 이같은 정보를 공개할 때 기밀해제 판단의 주체와 정보의 신뢰도 중 최소한 한 가지는 밝히는 것이 관례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때문에 이번 정보공개의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전략적 실수였음을 알리려 한다는 것이 베딩필드 국장이 밝힌 공식 이유였지만, 해당 메시지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푸틴 대통령을 겨낭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반면, 러시아 군부의 직언을 유도해 푸틴 대통령이 상황을 직시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허위 정보에 기댄 실패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미국 정부의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해당 정보공개가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보를 공개한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두고도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고위 참모들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불신을 유도해 참모 교체를 노린 것이라거나, 러시아 내부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분열을 조장해 푸틴 대통령을 흔들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미 정부의 정확한 의도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긍정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공산이 크다. 이를테면, 푸틴 대통령이 자국군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전쟁을 지속할 명분과 동기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 있다. 영국 정보기관 등 유럽에서 푸틴 대통령이 전황을 오판하고 있다는 미국의 평가에 힘을 보탠 것 역시 해당 정보가 사태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도리어 전쟁의 키를 쥐고 있는 푸틴 대통령을 자극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참모들의 정보 보고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거나, 비판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푸틴 대통령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습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정보가 공개된 지 며칠이 지났다. 크렘린궁은 서방국가들이 “우리의 의사결정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예스맨’들에 둘러싸여 전황을 오판했을 가능성에 대해 전면 반박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퇴각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러시아의 입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진실을 직시한 푸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미 정부의 정보공개 판단은 옳은 선택이었는지, 향후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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