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산업에서 ‘자본의 지배’는 거악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미디어 혁신기에는 자본의 논리가 큰 역할을 했다. 미디어 산업은 ‘돈’과 ‘콘텐츠’의 논리 간 절묘한 균형을 맞추는 자가 승리해 온 분야였다. 과도한 자본 논리는 문화를 황폐화시켜 장기적 몰락을 불러오지만, 과도한 콘텐츠 논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건설이나 치킨 프랜차이즈 같은 낯선 언론사주의 등장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월가의 지역 신문 습격 사건이 연일 논란이다. 2019년 현재 미국 신문사 4개 중 하나는 사모펀드 소유다. 2001년만 해도 5%에 불과했다. 헤지펀드와 투자은행까지 합치면 미국 신문사의 절반 이상이 금융업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최근 발표된 한 워킹 페이퍼가 미국 학계 및 언론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미국 총 신문 유통 부수의 45%를 담당하는 766개 신문사들을 샘플로 통계 모델링을 돌려 분석한 결과 사모펀드가 인수한 신문은 비사모펀드 신문과 비교해서 기자 숫자는 7%, 에디터는 8.6% 적었다. 인수 5년 후 기사 건수는 16.7% 더 적었다. 특히 지역 정치 및 정책 관련 뉴스는 줄어들고(10.8%) 전국 뉴스는 많아(8.3%)졌다. 수익성 낮은 지역 뉴스 대신 인수한 지역 신문사들간 신디케이트 화를 통해 효율성 높은 전국 뉴스를 늘린 것이다. 문제는 지역 뉴스가 줄어들면, 지방 선거에 무관심해진다는 점이다.
대신 폐업은 피할 수 있었다. 사모펀드에 인수된 신문사들은 문 닫을 확률이 75% 낮아졌다. 2005년 이후 대략 2200개의 미국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모펀드가 지역신문 소멸을 저지한 셈이다. 뉴스룸을 희생시키고 생존을 이어가는 것과 아예 문을 닫는 것. 둘 중 전자가 차악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씁쓸한 분석을 내놓았다.
자본 확충과 디지털 경영 역량 강화에 먼저 뛰어든 언론사들은 다른 길로 들어섰다. 뉴욕타임스는 취향과 지불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번들링 상품에 차등화된 가격표를 붙여 갖가지 구독 상품 개발에 매진해왔다. 더 다양하고 품질 높은 콘텐츠에 투자하고 뉴스룸을 확대했다. 지난 1월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스포츠 보도를 강화하기 위해 디애슬레틱(The Athletic)을 인수해 총 유료 구독자 1000만명을 조기 달성했다. 자체 플랫폼 전략을 고도화하는데도 그 이상의 자원을 쏟는다. 덕분에 포스트-트럼프 시대 정치 뉴스에 대한 흥미 감소로 독자 하락에 직면한 경쟁사들과 달리 순항 중이다. 투자 확대, 비즈니스 모델 혁신 등 디지털 시대의 ‘자본 논리’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콘텐츠 혁신’을 병행하는 균형감이 뉴욕타임스의 독보적 강점이다. 반면 초일류 IT 역량과 아마존 플랫폼 생태계 편입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것으로 예상됐던 워싱턴포스트는 독자 하락에 직면했다. 2021년 말 현재 디지털 구독자는 연초보다 30만명 줄어든 270만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한 콘텐츠 혁신이 병행되지 않는 하드웨어 투자는 효과가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세계 신문사들은 지금 쩐의 전쟁 중이다. 이 불가피한 자본 논리의 시대에 국내 언론사의 손바뀜이 미국 사모펀드의 암울한 스토리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과도한 저널리즘 엄숙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언론사의 ‘경영’ 역량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고 돈 버는 얘기가 더 공론화돼야 한다. 그게 건전한 저널리즘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