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 추경'의 배신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금리가 뜀박질하고 있다. 대표 시장금리로 통하는 3년 만기 국고채(국채) 금리는 지난 1일에 전 거래일보다 0.121%포인트 오른 연 2.784%에 마감했다. 2014년 6월12일(연 2.789%) 후 최고치다.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대출금리도 뛰는 중이다.


통상 은행들은 국채 금리를 비롯한 시장금리에 추가로 금리를 얹어 대출 금리를 산출한다. 우리은행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우리아파트론’ 고정형의 지난달 29일 금리는 연 4.10~6.01%로 집계됐다. 전날보다 0.11%포인트가량 오른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6%를 넘어선 것은 7년 만이다.


치솟는 금리의 충격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에 집중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예금취급기관의 자영업자(비법인기업) 대출은 436조7000억원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해 86조7000억원이나 폭증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벌이가 시원치 않자 원재료 구매와 직원 급여 등 운영자금을 빚으로 충당한 결과로 해석된다.


뛰는 대출금리에 따라 자영업자 살림은 한층 팍팍해질 전망이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가구(자영업자가 가구주인 가구) 가운데 적자 가구는 78만 가구로 집계됐다. 적자 가구란 소득에서 필수 지출과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뺀 값이 마이너스인 가구를 뜻한다. 적자 가구 가운데 적자를 감당할 기간이 1년 미만인 ‘유동성 위험 가구’는 작년 말 27만 가구로 추정됐다. 이들 가구가 운영하는 업체가 올해 안에 폐업할 위기에 몰렸다는 의미다. 빚으로 근근이 버틴 자영업자들이 하나둘씩 무너질 공산이 크다.


금리가 뜀박질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 중앙은행(Fed)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Fed는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오는 5월에 0.5%포인트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도 지난 2월에 연내 기준금리를 2~3차례 추가 인상할 뜻을 내비쳤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는 지난 1일 “기준금리로 가계부채 문제가 연착륙하도록 이끌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빨라지는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에 국채 금리도 꿈틀거리는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소상공인 손실 보상을 위해 최대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나선 것도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는 ‘재료’로 작용했다. 추경 규모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지만, 윤 당선자는 50조원 추경 편성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추경 자금을 마련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국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국채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면 국채 가격이 급락(국채 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추경이 금리를 밀어올려 되레 자영업자 살림을 옥죌 수 있다. 자영업자 지원 정책의 역설이자 배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영업시간 단축을 강요당한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 하지만 50조원 규모의 추경 역효과가 상당할 전망이다. 자영업자 대출 연장·연착륙 방안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분석도 많다. 자영업자 지원 방안을 보다 세심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