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지만 세입자는 그럴 수 없다. 계약 전에 여기가 내 보증금을 떼어먹지 않을 안전한 집인지 확인하는 ‘돌다리 두드려보기’ 과정을 한국의 주택임대차시장은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납국세, 선순위 확정일자 등 추가로 알아야 하는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니, 이 집이 정말 안전한 집인지 알기 어렵다. 세입자 스스로 등기부등본을 보는 방법을 익혀본다고 해도, 반쪽짜리 해답에 불과한 이유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여 혹시 모를 보증금 미반환 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하는 집에 사는 세입자의 보증금은 무방비하다. 임차권등기명령제도가 있긴 하지만 완전하지 못하다.
높은 보증금을 담보 삼아 갭투기를 하는 주택에 사는 세입자는 눈 뜨고 코 베인 듯, 보증금 불안을 겪는다. 한 청년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자신이 살던 집이 깡통전세임을 알게 됐다. 이사를 앞두고 임대인과의 연락이 끊겨 수소문하다가 확인한 정보다.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2억으로 동일한 집이다. 대출을 받아 마련한 보증금이었기에 눈앞이 깜깜하다. 이 집은 세입자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제도의 허점도 노렸다. 세무서에서 압류까지 걸어둔 집이었는데, 이 정도면 계약 전에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봤자 소용이 없었을 터다. 미납국세, 선순위 확정일자 등은 임대인이 동의해야 열람할 수 있는데, 그렇게 협조적인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보증금이 안전한 집인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고, 떼인 뒤에 돌려받을 방법도 마땅치 않으니, 세입자의 주거 불안이 극심할 따름이다.
제도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내 돈을 영영 돌려받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2022년 2월을 기준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금을 떼먹은 임대인을 대신하여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은 누적 1조4000억에 달한다. 민달팽이유니온도 보증금 미반환 상담을 꾸준히 다루지만 숨이 차다. 피해를 입은 세입자가 짊어지게 되는 돈과 상심의 무게를 함부로 가늠하기 어렵다. HUG가 지난해 국민의힘 김상훈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악성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 3명 중 2명이 청년이다. HUG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집에 사는 저소득층까지 고려한 피해 규모는 아예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1981년, 세입자가 안정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처음 제정됐다. 41년이 지난 지금, 세입자의 주거 안정은 여전히 요원하다. 집값폭등의 여파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어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며 세입자가 대출받아야 할 보증금이 턱 밑까지 차올랐고, 그 빚은 때때로 떼어먹히기까지 한다. 내 보증금이 어쩌면 영영 증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근거 있는 두려움, 이것이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증폭시킨다. 세입자는 언제쯤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을까? 한국의 주택임대차시장은 언제쯤 세입자의 보증금을 떼어먹지 않을까? 민달팽이가 세입자와 함께 나아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