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어떻게 뉴욕타임스에서 성장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뉴스룸 직원(기자 및 디자인, 엔지니어 등)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경험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10월 ‘뉴스룸 문화 및 커리어 개발부(Newsroom Culture and Careers Department)’를 신설한 후 내놓은 성명이다. 이 부서는 기자 경력이 풍부한 6명으로 구성됐으며 회사 인사부(HR)와 긴밀히 협력해서 일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기업 문화’, 건강한 ‘뉴스룸 문화’를 만드는 데 투자한 것이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아이콘인 ‘뉴욕타임스’조차 기업 문화 전담 부서를 신설했을 정도로 그동안 미디어 기업들은 사내에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 데 무관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뉴스를 다루며 데드라인으로 인해 항시 초긴장 상태에서 근무해야 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사도 ‘기업’이다. 더구나 디지털 전환을 해야 하는 시기에 일반 기업과 비교해 의사결정 과정, 다양성 등에 있어서 ‘후진적’ 기업 문화는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NYT “그동안 50대 백인 남성이 주류였다”... 작년 10월 뉴스룸 문화 부서 신설
미국에서도 뉴스룸 내 인종 차별, 성 차별이 있으며 성추행 등의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도 스스로 ‘50대 백인 남성’이 사내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며 자성했을 정도다.
특히 구글, 애플,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창업 때부터 건강한 ‘기업문화’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인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기업문화가 하나의 상품이자 회사의 긍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및 공동 CEO는 회사의 문화 원칙을 담은 ‘규칙없음(No rules rule)’이란 책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론사들은 뉴스룸의 ‘문화’를 언급하는 것조차 드물었다. 이를 뉴욕타임스가 먼저 개선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에서도 언론사가 문닫는 사례가 많고 능력 있는 기자들은 기업으로 이직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는 인재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저널리즘 환경도 척박해졌다. 언론사 내 ‘커리어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언론사와 뉴스룸은 ‘명령과 복종’ ‘충성도’ ‘순혈주의’ 외에는 달리 기업 문화를 설명할 단어가 없을 정도로 열악한 지경이다.
뉴스룸에 ‘기자’만 존재한다는 개념도 낡은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서비스 개발팀, 기획자, 홍보 마케터, 콘텐츠를 지원하는 광고팀, 디지털팀 등도 뉴스룸 인력으로 포함 되어야 한다.
언론사 경영진과 편집국의 ‘건강한 줄다리기’도 성장하고 성공하는 미디어 기업의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 키워드다. 언론사의 양대 축인 ‘경영진과 편집국’의 갈등이 커도 문제고 너무 가까워도 문제다. 이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갈등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언론사 경영진은 편집국이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다고 불평하고 수준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매출, 수익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기도 한다. 편집국도 매출과 이익 창출은 자신의 몫이 아니고 ‘경영진’이 해야할 임무로만 생각하기도 한다. 저널리즘 학계에서는 이를 ‘신정갈등’이라고 부를 정도의 논쟁거리다.
특정 세대·성별이 지배한 뉴스룸, 다양성 이해 낮고 독자 포용 어려워
하지만 디지털 전환의 시기에 사측이나 편집국 모두 광고주나 권력이 아닌 ‘독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원칙에 동의해야 한다. 데이터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제품(프로덕트) 중심으로 사고하는 문화를 갖추면 이 같은 갈등은 상당히 해소할 수 있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기업 문화’ 및 ‘뉴스룸 문화’를 만드는 것은 디지털 전환기의 핵심 경쟁력이다. 특히 각 언론사의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 기업 문화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기존 제작 시스템과 데이터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 맞춰진 기업문화로 ‘디지털 전환’을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환경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 특정 세대와 성별, 학벌이 지배하는 뉴스룸 문화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낮아서 떠오르는 독자군을 포용할 수 없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없다.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을 바꾸는 데 가장 큰 도전은 ‘문화’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뉴욕타임스가 ‘뉴스룸 문화 및 커리어 개발’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시의적절한 판단과 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에서 지난 3월 개최한 ‘뉴스룸 문화 마스터클래스’에서도 승리하는 ‘뉴스룸 문화’를 만드는 것에 디지털 전환의 성패가 달렸다는 주장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가넷(Garnnett)의 마리벨 페레즈 와즈워스(Maribel Perez Wadsworth) 사장은 “뉴스룸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저널리즘에 대한 접근을 바꾸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조직 내에서 언론인의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전국지인 USA투데이를 발행하는 가넷은 판매 부수 감소와 유료화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최근 디지털 전환을 완성시키고 가입자를 끌어올리고 있다.
기자들도 ‘기업가 정신’ 가져야
와즈워스 사장은 “특히 기자들에게 기업가정신(앙트러프러너십)을 고양시키는 것은 콘텐츠를 만들 때뿐만 아니라 독자들과의 연결을 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기사를 작성하는 대신 독보적인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실적이 저조한 콘텐츠를 없애고 대신 더 적은 수의 스토리를 제작했다. 기사 수가 줄었음에도 트래픽 감소도 없었고 디지털 구독이 약 50% 늘었다”고 소개했다.
캐나다의 글로브 앤 메일의 데이비드 왐슬리 편집국장은 ‘뉴스룸 마스터 클래스’에서 “경영진은 뉴스 비즈니스의 핵심은 퀄리티 저널리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편집국은 비즈니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격변의 시대를 맞은 각 미디어 기업은 최고 경영자 및 편집국장부터 기업 문화, 뉴스룸 문화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디지털 전환 및 인재 확보에 핵심이라고 보고 전략을 짜고 실행해야 한다는 세미나 내용이었다.
때문에 다양성을 확보하고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와 데이터에 기반한 경영을 하는 기업문화, 뉴스룸 문화를 만드는 것은 미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초국경(크로스 보더) 미디어 플랫폼’을 지향하는 더밀크(TheMiilk)가 창업 초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었다.
광고 없이 프리미엄 유료 구독 서비스(더밀크닷컴)를 운영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고 반영할 수밖에 없다. 독자 데이터를 창업부터 쌓고 있으며 독자의 반응이 신사업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또 더밀크는 미 실리콘밸리(팔로알토)에 본사를 두고 미국의 뉴욕(뉴저지), 시애틀, 애틀랜타, LA, 보스턴, 시카고, 한국(서울), 유럽(아일랜드) 등 세계 각지에서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다. 근무 시간이 각각 다르고 독자들도 세계 각지에 있기 때문에 ‘마감 시간’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도 시간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 기본적으로 재택근무를 권장하며 집에서 육아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는 개인이 선택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필수적이다. 더밀크의 실험은 미디어 기업의 문화에 대한 근본적 고민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