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는 2002 한·일월드컵 개최 20주년을 맞아 A매치(국가대항전) 기간인 6월 1~6일을 풋볼 위크(가칭)로 정하고 ‘4강 신화’ 주역과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축구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비롯해 안정환, 이천수 등 4강 태극전사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이런 모습은 10주년이던 지난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4강 태극전사가 재회해 과거 영광을 추억한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이번 20주년 행사는 KFA와 축구인 모두 과거 영광 재조명보다 미래 화두를 제시하는 장이 돼야 한다. 4강 신화는 지속해서 존중받아야 할 우리 축구의 빛나는 역사인 건 분명하다. 월드컵 개최로 국내 축구 인프라는 환골탈태했다. 4강 신화는 세계열강 틈바구니에 갇혀 변방으로 취급받던 한국 축구에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심었으며 재능 있는 ‘2002 키즈’를 발굴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축구는 4강 신화에 오랜 시간 도취해 유의미한 발전 방향을 잡지 못했다. 팬은 물론 여러 축구인도 대표팀 경기력이 조금이라도 신통치 않으면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KFA는 여론 분위기에 휩쓸려 무마용으로 감독 경질과 선임을 반복했다.
한일월드컵은 국내에서 열리는 최초의 월드컵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특수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프로축구 K리그 구단이 기존 원칙을 깨고 대표 선수를 사실상 무한정 차출하는 희생을 감수했다. ‘히딩크호’는 1년 6개월간 합숙 훈련을 하다시피 월드컵을 준비했다. 지금처럼 국제축구연맹(FIFA) 차출 원칙에 맞춰 대표팀을 꾸리는 것과 훈련의 양과 질 모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가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한 건 2010년 남아공(16강) 대회, 딱 한 번이다. 여전히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서 1승, 16강이 현실적 목표다.
이번 20주년 기념행사를 두고 곳곳에서 “또 4강 신화 타령만 할 것이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이번에 청소년을 위한 축구리그 I리그 페스티벌이 열리고, 히딩크 감독이 KFA 지도자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등 미래지향적 행사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을 얻으면서 한국 축구의 새로운 20년을 내다볼 만한 주제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KFA는 정몽규 회장이 올 초 3선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임기 4년 동안 한국축구 백년대계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 회장을 중심으로 KFA는 이번 20주년 행사에서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오는 29일 충남 천안시에서 착공식이 열리는 대한민국 종합축구센터의 색다른 활용 방안이나, 여자월드컵 유치 재도전 등 정 회장이 ‘블루오션’으로 일컫는 여자축구 발전을 위한 새 메시지도 좋다. 또 한국 축구 문화를 대변하는 프로축구 K리그와 상생 정책을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 여전히 한국은 ‘대표팀 우선주의’ 속에서 선수 차출부터 운영까지 K리그가 불리한 구조에 놓여 있다. 1~2부 체제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며 ‘양적 성장’을 꾀한 K리그가 질적으로도 성장하는 데 KFA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K리그가 강해야 대표팀이 강해지고, 곧 KFA의 존재 가치도 빛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