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잘못되더라도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하는 게 취재진이다. 소방관도 불 끄러 들어갔다 잘못될 수 있다. 그거 위험해서 불 끄러 못 가는 것과 군인이 전장 가서 총 맞을까 걱정돼서 전장에 못 가게 정부가 말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쟁 취재 자체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데, 위험할까 봐 그 직업 자체를 못 하게 하는 발상이 문제다.”
분쟁지역 전문 PD로 유명한 김영미 PD는 지난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취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한국인이어서, 그리고 ‘프리랜서’ PD여서. 한국 정부는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13일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흑색 경보를 내렸다. 여권법에 따라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누구도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 한 달 뒤인 3월18일부터 ‘공익적 취재’ 목적의 입국이 허가됐으나, 외교부 출입기자단에 한해서였다. 결국, 김영미 PD는 거액을 들여 우크라이나 현지의 저널리스트를 고용해 폴란드의 한 호텔에서 화상 연결로 ‘간접’ 취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미 PD는 “외교부의 취재 통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며 “헌법이 보장한 취재(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 세미나’에선 우리 언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도가 주로 외신, 특히 서방언론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쟁 두 달이 지났는데 전문적인 분석을 제시하는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전쟁 취재·보도 시스템의 부재와 연결돼 있다. 기존 언론의 취재 공백은 크고, 전문성도 없으며, 이를 대체할 전문 인력 활용도 없이 상대적으로 간편한 ‘외신 받아쓰기’가 주를 이루는 것이다.
“2007년 이후 전쟁 취재 경험 없어, 실력도 없어졌다”
우리 언론의 취재 공백은 언제,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KBS 파리 특파원인 유원중 기자는 2007년 여행금지 및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제도가 시작된 이후라고 진단한다. 그해 우리나라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건 이후 이 제도가 도입됐다.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이라크가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됐고, 이후에도 내전 등이 일어난 시리아, 예멘(이상 2011년부터), 리비아(2014년부터) 등이 여행금지 국가로 묶였다. 15년 동안 우리 언론은 이곳에서 발생한 내전 등 전쟁 취재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셈이다.
유원중 기자는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사용이 힘들게 돼 있기 때문에 전쟁 취재 경험이 거의 없어졌다”면서 “전문성 있는 기자가 필요하고 현지에서 도와줄 네트워크, 현지 취재 기자 확보 등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력도 없다”고 했다.
“여행금지 제도가 없었던 2003년만 해도 이라크 전쟁을 취재했던 국내 취재진이 거의 100명 가까이 됐다.” 유 기자의 말이다. 그는 “그때 보도가 세련됐냐? 아닐 거다. 하지만 여행금지 제도가 생겨서 이후 전쟁 보도를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았다면 전쟁 보도를 잘 하기 위한 언론 보도 시스템이 개선되고 발전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외교부로선 ‘자국민 보호’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취재를 어떻게 하는지는 개인 취재진의 역량인데 그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감”이라고 김 PD는 말했다.
게다가 외교부는 지난달 ‘체르니우치주(州) 한정, 3일 이내, 4명 이내’로 우크라이나 입국 취재를 허가하면서 취재 활동 계획과 경호 업체 계약 서류 등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김영미 PD는 “외교부가 언론사 데스크가 된 것”이라며 “외교부가 취재 내용을 미리 알아야겠다고 하는 건 검열이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원중 기자도 “현재 체르니우치엔 어떤 호텔도 남아 있지 않고, 종군 기자는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차 안에서라도 자야지 하는 심정으로 (현장에) 들어가는데 사전에 외교부가 숙박 예약과 활동계획서 등을 적어서 내라고 하니, 과연 정부가 이런 요구를 언론에 할 수 있는 건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국제 분쟁 뉴스 외신에 의존하면서 불편 못 느끼는 게 문제”
김영미 PD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서지 못했고, 유원중 기자는 우크라이나까진 들어갔지만 ‘뉴스의 중심’과는 먼 체르니우치에서 그나마도 2박3일만에 나와야 했다. 지난 두 달, 국내 언론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 뉴스로 보도되고 있지만, 사진과 영상은 물론 전쟁을 보는 관점까지 거의 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유원중 기자는 “지금 전쟁 보도가 서방언론 받아쓰기 중심으로 되면서 과연 우리나라 국민이 이성적으로 판단할만한 정보들을 한국 언론이 충분히 제공하고 있나, 저를 포함해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전쟁에서만큼은 서방언론이 중립성을 잃고 있다. 전쟁 성격이 패권전 양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실제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하고 있지만, 전쟁 양상은 신냉전, 패권 양상을 보인다. 패권의 한 축인 미국과 EU 언론이 전쟁을 중립적으로 볼 수 있겠느냐.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영미 PD도 “마치 미국에 유리한 보도가 우리에게도 유리한 것처럼 착각되곤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고는 전혀 알 수 없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경우 프로파간다 전쟁 양상이 심해 양국의 주장이 극과 극을 이룬다. 현장에서 누군가는 이걸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익과 관련된 취재를 외국 기자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전쟁 지역에서 직접 뉴스를 받는 건 기본 원칙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PD는 언론에 대해서도 “국제 분쟁 뉴스를 외신에 대부분 의존하면서 아무런 불편을 못 느낀다는 게 제일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이젠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천재지변, 전쟁, 내란 등이 장바구니 물가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은 ‘한국은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며 의아해한다. 김영미 PD는 “강대국의 지위는 누리고 싶고, 선진국이고는 싶고, 하지만 그쪽에서 나오는 뉴스는 알고 싶지 않고 이런 게 우리 사회에서 기형적으로 작용한다”며 “이게 바로 공무원 보신주의고 국가가 힘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검열하는 상당한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는 이제 은퇴까지 7년밖에 안 남았다. 제가 은퇴하면 (분쟁) 현장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취재진이 몇 명이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앞으로 종군 취재 인프라를 위해서라도 취재의 자유를 얻게 해주시고, 국민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현장 취재진에 시스템적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원중 기자는 “프랑스에서도 기자들이 납치되는 이런 일들이 벌어졌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언론을 규제하지도 않았고 국민도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헌법적 권리를 찾는 일에 언론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