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묻지마 총기난사', 왜?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최근 미국 텍사스주의 소도시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18세 남성이 무차별 총격으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일어났다. 크고 작은 총기 관련 사건·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 미국이지만, 지난 2012년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이후 10년만에 일어난 최악의 참사인 만큼 텍사스주는 물론 미국 전역이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이번 사건이 미국 역사에서 손에 꼽힐 만큼 충격적인 참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라고 보도하는 언론은 어디에도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 내에서 총기로 인한 비극은 끊이지 않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불과 2주 전 뉴욕주 버팔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총기 난사로 10명이 사망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뉴욕 지하철에서 출근길에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필자가 기고를 시작했던 2019년 8월 첫 원고 역시 당시 일주일 동안 연이어 발생한 4건의 총기 참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학교 내’에서 무고한 ‘어린이’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에 주목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미국에서 교내 총기난사는 1999년 콜럼바인 사건 이후 잊을만 하면 발생했다. 이번 사건 보도에서 10년 전 일어난 샌디훅 사건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도, 당시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등 28명이 사망했고 범인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학교로 향했다는 점까지 이번 사건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유사한 참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총기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총기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수정헌법 2조에 따라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개인의 총기 보유를 허용하는 만큼 미국인들은 일정한 연령이 되면 대형 마트나 스포츠 용품을 취급하는 상점에서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매할 수 있다. 미 여론조사 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성인 10명 중 4명이 가정 내에 자신 혹은 구성원 소유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쉽게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총기로 인한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하게 총기로 인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이 총기를 쉽게 보유할 수 없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총기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미국 내에서 가장 민감한 정치 이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총기 로비단체 전미총기협회(NRA)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번번이 유사한 비극을 겪으면서도 총기 규제는 좀처럼 제도화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NRA는 사회적 공분에도 아랑곳 않고 사건 사흘 만에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기소유를 지지하는 연례총회를 열었다. 무고한 어린이들을 희생시킨 이번 참사로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음에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점쳐지는 이유다.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범행 전 소셜미디어에 살인을 예고했고 경찰의 오판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의 초점은 점차 ‘예방이 가능했던 전형적인 인재’라는 점에 맞춰지고 있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경찰이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이번 사건의 피해는 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막대한 정치자금과 로비로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NRA와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공화당이 변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이런 비극들을 막는데 아무런 의지가 없는 총기 로비와 정치세력 때문에 마비됐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이 울림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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