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과 헤어질 결심

[이슈 인사이드 | 문화] 김재희 동아일보 기자

김재희 동아일보 기자

요즘 극장가를 술렁이게 만드는 영화 두 편은 ‘탑건: 매버릭’(탑건2)과 ‘헤어질 결심’이다. 탑건2는 너무 많이 봐서, 헤어질 결심은 너무 안 봐서 문제다. 탑건2는 11일 기준 465만 관객을 달성했다. 아이맥스, 4DX, 돌비시네마 등 다양한 특별관에서 ‘도장깨기’를 하는 N차 관람 열기가 식지 않는 것으로 보아 500만 관객은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마블민국’인 우리나라에서 마블스튜디오의 ‘토르: 러브 앤 썬더’ 개봉 1주일 만에 탑건2가 예매율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은 이례적이다.


반면 박찬욱 감독에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헤어질 결심은 개봉 2주차에 접어들었지만 관객은 100만명이 채 안된다. 박찬욱 감독의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였던 ‘친절한 금자씨’(312만명), ‘박쥐’(221만명), ‘아가씨’(428만명) 등과 비교했을 때 더욱 아쉬운 성적표다. 헤어질 결심은 15세 관람가인데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는 예술영화가 아닌 대중오락영화”라고까지 작심 발언했다. 폭력적, 선정적인 장면은 거의 없고, 코믹 요소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대중영화’가 되기 위해 애쓴 구석이 보여 흥행 부진에 더 속이 쓰리다.


박찬욱이라는 이름 석 자,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홍보문구만으로 손익분기점은 식은 죽 먹기로 넘기는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은 불과 몇 년 사이 격세지감이 됐다. 기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선 집에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졌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영화 티켓 가격 인상(주말 일반관 기준 1만1000원에서 1만5000원)도 영향을 미쳤다. 극장 체험을 강조하지 않은 영화는 1만5000원을 내고 극장에서 보기에 돈 아까운 시대가 온 것이다.


코로나19 시국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쏠리는 건 블록버스터들이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SF영화 ‘듄’(158만명)은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지난해 10월 개봉했지만 거대한 사막과 행성을 아이맥스로 즐기려는 관객들이 줄을 이었다. 세계관에 빠져드는 것이 중요한 마블 스튜디오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월 개봉·588만명)도 특별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투기 신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탑건2도 마찬가지다. 더 비싼 돈을 지불하더라도 집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적 자극을 체험하기 위해 특별관을 찾는 것이다.


영화계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헤어질 결심이 100만 관객도 모으지 못하는 ‘기현상’을 목격한 감독과 제작사는 충격에 빠졌다. 1000만 영화를 연출한 감독 겸 제작사 대표는 기자에게 “‘헤어질 결심’ 사태를 보며 ‘앞으로 탑건2 같은 액션 블록버스터만 만들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투자배급사도 독립예술영화 발굴에 소극적이어 질까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지금대로라면 그의 우려대로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모두 돈이 되는 스펙터클 영화들에 쏠릴 가능성이 높다.


특별관으로 돌파구를 찾은 극장은 중저예산영화, 독립예술영화들의 생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괄적으로 티켓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코로나19 동안의 적자 책임을 관객에게만 미루는 것도 무책임하다. 코로나19 이후 진입장벽이 높아진 일반관 티켓은 더 저렴하게 책정하는 등 상영관 별 가격책정 차별화를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수익성을 이유로 우후죽순 일반관으로 전환하거나 폐관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의 부활도 필요하다. 마블 세계관을 사랑하는 관객이 있듯, 헤어질 결심을 10번 씩 보는 관객도 있다. 영화 팬들은 아직 극장과의 헤어질 결심이 서지 않았다.

맨 위로